"그동안 카카오에 드리워진 주가 조작과 시세 조종이라는 그늘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겸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이 21일 'SM엔터테인먼트 시세 조종' 의혹과 관련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직후 "오랜 시간 꼼꼼히 자료를 챙겨봐주시고 이 같은 결론에 이르게 해준 재판부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이같이 말했다. 유료로 쓰던 문자메시지를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으로 대체하며 벤처 창업 신화를 쓴 김 창업자의 무죄 소식에 카카오는 일제히 환영의 뜻을 밝혔다. 김 창업자는 앞으로 카카오그룹의 미래 전략을 구상하는 데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시세 조종 의혹 사건이 대법원까지 갈 가능성이 커 아직 완전히 사법 리스크를 해소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날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5부(재판장 양환승)는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 창업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지난 8월 29일 검찰은 김 창업자에게 징역 15년과 벌금 5억원을 구형했다. 이는 시세조종 혐의에 대해 양형위원회가 제시한 법정 최고형이었다.
카카오 측은 판결 직후 "그동안 카카오는 시세조종을 한 부도덕한 기업이라는 오해를 받아왔다"며 "1심 무죄 선고로 그러한 오해가 부적절했음이 확인된 것이라 이해된다"고 밝혔다. 이어 "2년 8개월간 이어진 수사와 재판으로 카카오그룹은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며 "특히 급격한 시장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하기 힘들었던 점이 뼈아픈데, 이를 만회하고 주어진 사회적 소명을 다하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김 창업자는 지난해 8월 구속됐다가 같은 해 10월 보석으로 풀려났다. 이후 건강 문제로 올해 3월 그룹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CA협의체 공동 의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그룹의 비전 수립과 미래 전략을 그리는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 직책은 유지하고 있다.
카카오는 사법 리스크에 발이 묶이며 인공지능(AI)을 포함한 미래 신사업 대응에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공모한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에서도 네이버, LG AI연구원, SK텔레콤, NC AI, 업스테이지에 밀려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최근 단행한 대대적인 카카오톡 업데이트는 이용자 반발에 부딪혔다. 업계 관계자는 "대규모 인수합병과 사업 재편은 창업자가 직접 나서지 않으면 민첩하게 이뤄지기 힘든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 창업자는 당장 회사에 복귀하기보다 올해 초 방광암 초기 진단을 받은 만큼 카카오의 미래를 고민하며 건강 챙기기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카카오와 그룹의 독립 기구인 카카오 CA협의체는 정신아 대표가 이끌고 있다.
카카오가 그룹 차원에서 핵심 사업으로 꼽는 금융 부문도 한숨을 돌렸다. 금융권에 따르면 인터넷전문은행법은 '인터넷은행 대주주가 최근 5년간 △조세범 처벌법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공정거래법 등의 위반으로 벌금형 이상의 처벌을 받은 사실이 없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특히 직원과 회사에 책임을 묻는 양벌 규정 등에 의해 적격성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판단될 경우, 보유 주식 한도(10%)를 초과해 보유한 은행 주식을 처분하라는 명령을 받을 수 있다.
김준익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번 판결로 창업자의 '상징 자본'이 회복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며 "플랫폼 기업에서 상징 자본은 투자자, 소비자, 파트너사의 신뢰를 연결하는 핵심 요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카카오 내부에서도 의사결정 투명성과 리스크 관리 체계를 강화하는 '거버넌스 학습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