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사와 제조사의 지원금 경쟁을 촉발시켜 소비자 편익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된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 폐지 법안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법안 심사 소위원회 문턱을 넘었다. 기존 단통법 조항 대부분은 폐지 쪽으로 가닥이 잡혔지만 야당이 주장해온 스마트폰 제조사의 장려금 규모 자료제출 의무 조항은 새로 추가됐다. 이를 두고 단통법 폐지 법안의 당초 취지와는 달리 지원금 축소라는 역효과를 내는 반쪽짜리 법안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단통법 폐지 법안이 지난 21일 국회 과방위 법안 소위에서 여야 논의 끝에 통과됐다. 단통법 폐지 법안은 박충권 의원(국민의힘)과 김현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법안이 병합돼 통과됐다. 주요 내용을 보면 공시지원금 제도와 추가지원금 상한은 폐지된다. 가입유형(번호이동·기기변경·신규가입)이나 요금제에 따른 차별 금지를 규정한 조항도 폐지된다.
하지만 이용자 거주지, 나이, 신체조건에 따른 지원금 차별 금지 조항과 25%의 통신요금 할인 제공을 의무화한 조항은 단통법에서 전기통신사업법으로 이관해 유지하기로 했다.
스마트폰 제조사의 장려금 정보 자료제출 의무 조항도 당초 야당의 법안대로 관철됐다. 이동통신사는 단말기 판매량, 출고가, 매출액, 지원금, 장려금 규모 및 재원 자료를 정부에 제출해야 하며, 단말기 제조업체별로 이동통신사에 지급한 장려금 규모를 알 수 있도록 작성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현행 단통법에는 이런 내용이 없었다. 전기통신사업법으로 이관될 조항에는 정부가 해당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있다. 공시 지원금은 이동통신사가 일부 부담하고 나머지는 제조사가 장려금으로 분담한다. 삼성과 애플 등 제조사들은 통신사가 제공하는 공시 지원금 중 일부를 장려금으로 지원해왔다.
업계는 제조사의 장려금 정보 제출 의무화가 현실화되면 공시 지원금이 지금보다 크게 축소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제조사들의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지원금 규모가 외부에 알려지면, 지원금을 지급하지 않거나 한국보다 적은 장려금을 지원하는 해외 다른 국가에서 제조사들을 향해 동일한 수준의 장려금을 요구할 수 있어서다. 이러한 우려 때문에 제조사들은 국내에서 장려금 지급을 크게 축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홍대식 서강대 ICT법경제연구소장은 “공시 지원금 상한을 풀고 가입자 유형과 요금제에 따라 차별적 지원을 허용한 것은 어느 정도 통신사들의 지원금 경쟁에 효과가 있겠지만 25% 요금할인 등 통신사의 비용 부담을 남긴 상태에선 지원금을 크게 확대하는 것을 기대하긴 어렵다”면서 “공시 지원금의 또다른 한 축인 제조사의 장려금 경쟁을 막는 조항을 추가한 것은 오히려 단통법보다 소비자 편익이 줄어드는 반쪽짜리 법안을 만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아무리 정보의 외부 공개를 막는 단서 조항이 있어도 단통법을 폐지한 후 공시 지원금이 오르지 않으면, 국정감사 등을 통해 외부에 공개될 가능성이 있는데 제조사들이 어떻게 장려금을 대폭 늘릴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단통법 폐지 법안은 과방위 전체회의와 법제사법위원회 심사를 통과하면 국회 본회의 의결을 거치게 된다. 여당과 야당 모두 단통법 폐지안을 발의했고 과방위 법안 소위를 여야 합의로 통과한 만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심주섭 과기정통부 통신이용제도과 과장은 “여야가 속도를 낼 경우 빠르면 올해 안에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도 있다”며 “법안 소위를 통과한 법안 내용이 아직 확정적인 건 아니고, 향후 과방위 전체회의와 법사위 심사를 거치면서 일부 내용이 수정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