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과 삼성전자가 확장현실(XR) 글래스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헤드셋 형태의 기기에 비해 가볍고 착용이 쉬워, 판매량을 늘리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헤드셋 제품보다 적은 부품이 들어가는 만큼 상대적으로 저렴해 더 많은 소비자를 유인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애플과 삼성전자는 XR 글래스가 시력 교정을 해주거나 증강현실(AR) 콘텐츠를 여러 이용자에게 공유해 주는 기술 등을 개발하고 있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애플은 이달 미국 특허청(USTPO)에 노안 증상으로 시력이 감퇴한 이용자를 대상으로 시력 교정을 해주는 스마트 글래스에 관한 특허를 공개했다. 기기에 적용된 렌즈가 이용자의 시선을 추적하고 초점이 맞게 자동으로 조절해 주는 방식이다. 애플은 지난달부터 아이폰으로 구동되는 글래스 형태의 가상현실(VR) 기기 개발도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애플은 지난 2010년 아이폰을 안경에 끼워 VR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는 기술에 대한 특허를 공개한 바 있다.
삼성전자는 이달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를 통해 헤드셋이나 글래스 형태로 구현할 수 있는 증강현실(AR)에 관한 특허를 공개했다. 이용자가 보고 있는 공간 안에 가상으로 만들어 낸 물체를 띄우는 기술이다. 인터넷이나 메신저 같은 애플리케이션을 허공에 띄워놓고 사용하는 데 해당 기술이 활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USTPO를 통해 글래스 이용자 간 AR 콘텐츠를 공유할 수 있는 특허를 공개하기도 했다. 한 이용자가 특정 콘텐츠를 주최하면 다른 이용자가 참여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가상 스포츠 게임을 비롯한 다양한 콘텐츠를 여러 이용자가 함께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내년 하반기에 구글·퀄컴과 개발한 XR 글래스를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2월부터 XR 글래스 개발을 위해 퀄컴과는 하드웨어, 구글과는 운영체제(OS) 부문에서 협력하고 있다. 노태문 삼성전자 MX사업부장(사장)은 지난달 퀄컴 스냅드래곤 테크 서밋에서 “이제 XR 생태계에서 새로운 렌즈를 통해 AI의 이점을 확인할 때”라고 밝히며 인공지능(AI) 기능을 접목한 새로운 XR 폼팩터의 등장을 암시했다.
애플과 삼성전자가 글래스 형태의 기기를 개발하는 이유는 상대적으로 무겁고 비싼 헤드셋 형태의 기기보다 쉽게 판매량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글래스 형태의 제품은 헤드셋보다 가벼운 데다 부품이 더 적게 들어가 저렴한 가격 책정이 가능하다. 메타의 ‘메타 퀘스트3′를 비롯한 XR 헤드셋은 평균적으로 90만원대에 육박하지만, 엑스리얼사의 ‘엑스리얼 에어 2′를 비롯한 글래스 제품은 50만원대에 구매할 수 있다. XR 글래스 제품의 무게는 평균적으로 70g인 반면 헤드셋의 무게는 500g이 넘는다.
애플이 지난해 공개한 XR 헤드셋 비전 프로는 기대 이하의 판매량을 보이며 흥행에 실패했다. 업계는 비전 프로의 흥행 실패 요인 중 하나로 무게를 꼽는다. 비전 프로의 무게는 650g인데 이는 아이패드 9세대(498g)보다 무거운 수준이다. 이 때문에 이용자가 실내·외에서 장시간 쓰기 어려워 콘텐츠 체류 시간을 늘리는데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업계 관계자는 “애플 비전 프로가 XR 기기 시장에 지각 변동을 일으킬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지만, 결국 흥행에 실패하면서 시장의 관심이 글래스 형태 기기로 넘어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애플과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당장 흥행 여부가 불투명하더라도, 제품을 출시해 투자금을 일부라도 회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삼성전자는 AR 관련 투자를 꾸준히 이어왔는데, 2022년에는 AR 전문기업 디지렌즈에 5000만달러(약 699억원)를 투자하기도 했다. 애플도 2021년부터 LG디스플레이, 소니 등과 함께 AR 기기 핵심 부품 개발을 이어오고 있다.
남상욱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애플 비전 프로의 흥행 실패 이후 어려운 시장 여건 속에서도 애플과 삼성전자가 AR 경험을 소비자에게 확장할 수 있는 방법을 지속해서 고민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