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챗GPT·달리3

‘탈석유’를 외치며 신성장 동력을 찾고 있는 중동 국가들이 국부펀드를 중심으로 정보기술(IT) 투자에 눈을 돌리고 있다.

투자 대상은 대규모언어모델(LLM) 같은 소프트웨어부터 인공지능(AI)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등 하드웨어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이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MS)·IBM·퀄컴 등 글로벌 빅테크 뿐 아니라 국내 IT 기업들 사이에서도 중동과 손 잡으려는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22일 MS에 따르면 세계 최대 자산운용 회사인 블랙록과 아랍에미리트(UAE)의 AI·반도체 기술투자회사 MGX는 300억달러(약 40조원) 규모의 사모펀드를 조성했다. CNBC는 이와 관련해 “UAE는 아부다비를 ‘AI 허브’로 만들 계획으로 투자 중”이라며 “투자 규모는 앞으로 최대 1000억달러(약 133조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전했다.

‘챗GPT의 아버지’로 불리는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 역시 최근 중동과의 투자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CNBC에 따르면 MGX는 오픈AI에 대한 투자를 검토 중이며, 올트먼 CEO는 이미 UAE의 AI 기업 G42로부터 최대 100억달러(약 13조4000억원)의 투자금을 조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 밖에도 UAE 3위 국영 펀드인 무바달라는 지난 4월 오픈AI의 경쟁사인 앤트로픽에 5억달러 규모의 자금을 투입했다.

실제 중동의 국부펀드는 최근 몇 년간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충분한 자금 동원력을 갖추고 있는 상황이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걸프협력회의(GCC) 회원국의 총 자산은 현재 2조7000억달러(약 3610조원)에서 2026년 3조5000억달러(약 4679조원)로 증가할 것으로 추산된다.

중동 지역 데이터센터 건설과 관련해 글로벌 빅테크의 투자도 줄을 잇고 있다. 아마존웹서비스(AWS)는 오는 2026년 완공을 목표로 사우디아라비아 내 데이터센터 준공에 53억달러(약 7조 3161억원)를 투입했으며, IBM·알리바바 등도 사우디와 AI 인프라 구축 협약을 체결했다.

◇ 사우디에 공 들이는 네이버 vs UAE 공략하는 카카오

국내 IT 기업들도 중동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우선 네이버는 올해 안에 사우디아라비아에 중동 지역 총괄 법인(네이버 아라비아·가칭)을 설립할 계획이다. 네이버 관계자는 “사우디 인사들이 네이버랩스의 로봇 기술과 생성형 AI 하이퍼클로바X 등 네이버의 ‘테크 컨버전스’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있다”면서 “사우디를 거점으로 중동 지역 외연 확장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네이버의 중동 법인 설립은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으나, 업계에서는 네이버 아라비아 법인장을 채선주 네이버 대외·ESG 정책 대표가 맡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채 대표는 사우디에 네이버 AI를 수출한 초기부터 관련 사업을 진두지휘해 왔다.

현재 네이버는 사우디가 글로벌 기업을 대상으로 제공하는 ‘지역본부유지정책(RHQ) 프로그램’에 참여해 첨단기술 분야 국책과제 수주에 나선다. 지난해 10월에는 ‘사우디 디지털 트윈 플랫폼 구축 사업’을 수주했으며, 정밀 3D 모델링을 활용해 사우디 도시계획, 홍수 시뮬레이션 등 서비스 개발을 이어갈 계획이다.

카카오는 UAE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난 8일 UAE의 토후국 중 하나인 샤르자 디지털청 관계자는 판교 카카오 사옥을 방문해 미래 모빌리티 기술을 체험하고 향후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카카오모빌리티 측은 자율주행·로봇·디지털트윈 등 미래 모빌리티 기술에 대한 비전과 실제 서비스 적용 사례를 소개했는데, 판교 사옥 내에서 운행 중인 로봇 배송 서비스 ‘브링(BRING)’ 시연 등에도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관계자는 “모빌리티 분야의 최신 기술 도입에 관심이 높은 샤르자 디지털청과 함께 향후 협력 가능성을 모색한 상황”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