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통신장비 회사들의 올 상반기 연구·개발(R&D) 투자가 일제히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 세계적인 5G(5세대 이동통신) 불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비용 지출을 줄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23일 각 사의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통신 전력 증폭기 생산 회사인 RFHIC의 올 상반기 R&D 비용은 61억원으로, 전년(110억원) 동기 대비 44.5%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통신 전력 증폭기는 저전력 무선 신호를 고전력 신호로 변환, 기지국 안테나를 구동하는 데 사용되는 장비다.
같은 기간 기지국용 무선주파수(RF) 부품 기업인 케이엠더블유(KMW)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5% 줄어든 170억원을 R&D에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RF 부품은 무선 신호를 송·수신하기 위해 활용되며, 통신 품질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중계기(DAS) 제조사인 쏠리드는 올 상반기 142억원을 R&D에 투자했다. 전년(147억원) 동기 대비 3.4% 줄어든 수치다. 중계기는 기지국으로부터 신호를 받아 네트워크 도달 범위를 넓히는 핵심 통신장비다. 기지국 등 통신장비 겉을 둘러싸는 케이스를 생산하는 서진시스템의 올 상반기 R&D 비용은 21억원으로 지난해(19억원)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최근 국내 통신장비 업체들의 주요 고객사인 화웨이, 노키아, 에릭슨, ZTE, 삼성전자 등은 5G 수요 감소로 실적 부진을 겪고 있다. 올 2분기 노키아는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32% 감소한 4억2300만유로(약 6300억원)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에릭슨의 영업이익은 24억스웨덴크로나(약 3140억원)로 전년 대비 52% 줄었다. 삼성전자 네트워크(NW)사업부의 지난해 매출은 3조78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9.7% 감소했다.
이는 전 세계 주요 국가의 5G망 구축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텔레지오그래피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미국 통신사 티모바일은 미 전역 96.3%에 5G망을 구축했다. 일본, 싱가포르, 쿠웨이트, 태국 등도 5G 구축률이 90%를 넘긴 상태다.
송영근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ICT전략연구소 미래전략연구실장은 “국내 통신장비사 입장에서는 5G 장비 매출이 나오지 않으니, R&D 비용을 줄일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이 같은 추세가 지속되면 ‘매출 감소-투자 축소-미래 매출 감소’의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막기 위해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기업 차원의 사업구조 전환 등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