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005930) 최대 노조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이 29일 파업을 선언하면서 삼성전자에 비상이 걸렸다. 삼성전자에서 파업이 발생한 건 1969년 창사 이후 처음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주력 반도체 사업에서 사상 초유의 적자를 낸 데다 세계 1위 D램 사업에서도 후발주자에게 추월을 허용했다. 갈 길이 먼 삼성전자 앞에 파업까지 현실화하면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노조가 당장 파업에 돌입하지는 않았지만, 향후 파업에 동참하는 직원들이 늘어나면 생산 차질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사측은 이를 대비해 노조와 대화의 여지를 열어두는 동시에 가능한 수단을 모두 동원할 전망이다.
◇ 전삼노, ‘성과급 불만’ DS부문 직원 위주로 구성... “파업 단계 밟아나갈 것”
전삼노는 이날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자들을 무시하는 사측의 태도에 파업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전삼노는 “사측이 아무런 안건 없이 본교섭에 임하고 있다”며 “파업에 대한 책임은 사측에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삼노는 “회사는 노조 리스크라고 얘기하지만, 지금은 경영 위기 사태”라며 “고대역폭메모리(HBM) 위기라고 하지만 일한 만큼 보상받지 못한다는 마음이 있고 이 때문에 사기가 떨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노총 산하 전삼노의 조합원 규모는 2만8400명으로, 전체 정규직 직원 12만4804명(작년 말 기준)의 22.8% 수준이다. 조합원의 90%가량은 반도체(DS)부문 직원들이다. 지난해 14조8800억원의 적자를 낸 DS부문의 올해 초 초과이익성과급(OPI) 지급률이 0%로 책정되자, 이에 불만을 품고 노조에 가입하는 DS 직원들이 속출했다. 지난 1월까지 1만3500명이던 조합원 가입 인원은 석달 사이 2배 넘게 늘어났다. 전삼노는 삼성전자가 현재 택하고 있는 경제적 부가가치(EVA) 기준이 아닌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성과급을 지급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전삼노는 당장 이날 조합원 전원에게 다음 달 7일 하루 연차를 소진하라는 지침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다만 7일은 현충일과 주말 사이에 낀 징검다리 휴일로, 애초에 연차를 계획한 직원들이 많아 생산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급여일(21일) 주간 금요일에도 자율적으로 쉬는데, 그럴 때마다 생산 차질이 생기진 않는다”며 “다음 달 7일에도 당장 공장이 멈추는 일은 없겠지만,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인력 순환 등 모든 방안을 강구해 생산 차질이 빚어지지 않게 조치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파업과 관련해 전삼노 측은 “모든 조합원이 연차 사용을 하면, 전체 직원 중 조합원 비율인 20%만큼의 데미지(영향)는 있을 것”이라면서도 “생산 차질을 끼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또 “아직은 소극적인 파업이지만, 단계를 밟아나가겠다”며 “파업이 실패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이를 통해 또 다른 전략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 “민노총 가입 발판 목적”… 勞勞 갈등 빚어져
전삼노의 파업 선언을 둘러싸고 노노(勞勞) 갈등도 불거지고 있다. 일부 직원들은 전삼노의 파업 목적이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삼성 5개 계열사 노동조합이 참여하는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최근 (전삼노) 행보와 민주노총 회의록을 보면 직원들의 근로조건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상급단체(민주노총) 가입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여 그 목적성이 불분명하다”고 비판했다.
실제 이날 전삼노 기자회견 현장에는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지난 24일 열린 전삼노 집회 행사에도 조합원 200명을 보냈다. 이 행사에서 최순영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금속노조 19만 조합원과 함께 전삼노를 지지하며 연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에서 두번째로 큰 삼성전자 DX노동조합은 파업 선언과 관련 “회사를 해사하는 행위로 노동조합의 위세와 위력을 행사하며 협상력을 높이는 구시대적인 노동 문화”라고 했다. DX노조는 전삼노의 상급단체 활동에 반대한 조합원들이 새로 만든 노조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서도 삼성전자 직원들은 전삼노가 민주노총 가입을 위해 파업에 돌입한 게 아니냐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한 직원은 “전삼노가 민주노총으로 상급단체 전환을 밀어붙이기 위해 파업 등 강경 투쟁으로 노선을 미리 정해 놓은 것 같다”며 “내부 직원들도 설득하지 못하는 DS부문만의 파업 아니냐”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