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SMIC가 처음으로 세계 시장 3위(매출 기준)에 올랐지만, 정작 수익성은 악화일로를 달리고 있습니다. 내수용 저가 반도체뿐만 아니라 중국 ‘반도체 굴기’를 상징하는 화웨이의 첨단 칩을 도맡아 생산하는데도 수익을 잘 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 정부의 반도체 자립 의지에 따라 운신의 폭이 좁아진 SMIC의 상황을 두고 업계에선 ‘빛 좋은 개살구’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이달 SMIC가 내놓은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올 1분기 SMIC가 출하한 웨이퍼(반도체 기판)는 179만장으로 전년보다 43% 늘었고, 가동률도 2개 분기 연속 4%포인트(P) 올라 80.8%를 기록했습니다. 수요가 늘면서 매출도 전년 동기보다 19.7% 증가한 17억5000만달러(약 2조3800억원)를 올렸습니다. 매출 증가에 힘입어 올 1분기 SMIC는 파운드리 시장에서 6%대 점유율을 기록해 TSMC, 삼성전자에 이어 세계 3위를 차지했습니다. 기존 3위였던 미국 글로벌파운드리와 4위 대만 UMC를 모두 제친 것입니다.
SMIC는 일견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회사의 수익성은 점점 더 악화하고 있습니다. SMIC의 올 1분기 순이익은 작년보다 68.9% 급감한 7180만달러(약 980억원)에 그쳤습니다. 매출 원가를 제외한 후 매출에서 얻은 이익의 비율을 뜻하는 매출 총이익률은 13.7%에 불과했습니다. 총이익률은 작년 1분기(20.8%)와 지난 4분기(16.4%)에 이어 하락세입니다. SMIC는 올 2분기에도 매출은 1분기보다 5~7% 증가하지만, 총이익률은 9~11% 수준으로 더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미국 제재에 맞서 자체 반도체 생산 능력을 키우려는 중국 정부의 지원 정책이 오히려 자국 파운드리 업계 수익성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중국 내 구형(레거시) 공정 반도체 시장에 공급이 쏠리면서, SMIC를 비롯한 중국 파운드리 업체들의 웨이퍼당 수익이 낮아지고 있다는 겁니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올해 중국에서는 정부 주도로 반도체 팹(공장) 18곳이 새로 가동될 예정인데, 이들 팹은 대부분 구형 공정을 활용한 반도체를 생산합니다. SMIC도 1분기 자본 지출을 작년보다 1.8배 넘게 늘리는 등 구형에 속하는 200㎜ 웨이퍼 팹 생산능력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SMIC의 1분기 재고회전율은 0.55회로, 칩을 새로 만들지 않고 쌓아둔 재고를 모두 판매하는 데에만 2개 분기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화웨이의 첨단 칩 주문이 SMIC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화웨이는 작년 7월 SMIC의 7㎚(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공정 프로세서가 내장된 스마트폰을 출시한 이후, 7㎚와 5㎚ 칩 생산을 모두 SMIC에 맡기고 있습니다. 문제는 SMIC가 낮은 수율과 비싼 공정 방식으로 화웨이의 주문을 감당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SMIC는 미 제재 대상인 첨단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대신 성능이 더 낮은 심자외선(DUV) 장비를 개조해 7㎚ 이하 회로를 그리는데, 이 장비를 4번 돌리는 쿼드러플 공정을 사용합니다. 업계에선 SMIC의 7㎚ 칩 제조 원가가 해외 경쟁사들보다 5배 이상 비싸다고 보고 있습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제조 비용은 중국 당국의 지원금으로 충당하고 있지만, SMIC가 지금처럼 ‘이 없이 잇몸으로 버티기’ 전략으로 화웨이의 스마트폰 혁신을 지원하는 한 수익성 개선은 어려울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