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가 인공지능(AI) 수요에 힘입어 지난해 세계 최대 반도체 설계 기업 자리에 올라섰다. 자체 제조 공장을 두지 않고 칩 설계를 위주로 하는 전 세계 팹리스(설계 전문회사) 상위 10개 회사 중 엔비디아는 나머지 9곳의 매출을 더한 것보다 더 좋은 성적을 거뒀다.
10일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엔비디아의 매출은 전년보다 105% 증가한 553억6800만달러(약 75조6300억원)를 기록했다. AI와 고성능컴퓨팅(HPC) 애플리케이션에 사용되는 엔비디아 H100 GPU(그래픽처리장치) 수요가 폭증한 영향이다. 이로써 엔비디아의 시장점유율은 18%에서 33%로 뛰어 전년 매출 기준 1위였던 퀄컴을 처음으로 제쳤다. 엔비디아의 가파른 성장세에 세계 10대 칩 설계 회사의 매출은 1676억달러(약 229조원)로 전년 대비 12% 증가했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강자 퀄컴은 휴대폰 시장 침체로 매출이 하락세를 보였다. 지난해 퀄컴의 매출은 전년보다 16% 감소한 309억1300만달러(약 42조2200억원)를 기록했다. 중국에 수출하는 AP 출하량이 크게 줄었고, 휴대용 장치와 사물인터넷(IoT) 부문 실적도 부진했다. 퀄컴의 팹리스 시장 점유율은 24%에서 18%로 하락해 2위로 내려갔다. 글로벌 스마트폰 AP 시장 3위 대만 미디어텍의 매출도 전년보다 25% 급감한 138억8800만달러(약 19조1700억원)에 그쳤다. 시장 점유율은 8%로 전체 5위다.
엔비디아와 퀄컴에 이은 3위는 브로드컴으로, 전년보다 7% 증가한 284억4500만달러(약 38조9100억원)를 벌어들였다. AI 칩 매출 비중이 약 15%를 차지해 선방했다. 4위는 AMD로 PC 수요 감소 탓에 매출이 전년 대비 4% 감소한 226억8000만달러(약 31조원)를 기록했다. AMD는 지난해 AI 반도체 매출 비중이 10%대 초반으로, 데이터센터 매출 비중이 80%에 달한 엔비디아와는 수익 구조가 판이했다.
올해도 AI 열풍이 지속되는 가운데 주요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업체(CSP)들이 대규모언어모델(LLM) 구축을 확대할 것으로 트렌드포스는 내다봤다. AI 스마트폰과 AI PC가 늘어나면서 글로벌 반도체 설계 업계의 매출 성장세는 이어질 전망이다. 엔비디아는 올해에도 주력 AI 칩인 H200과 출시 예정인 차세대 칩 B100, B200, GB200 등을 앞세워 시장 지배력을 키워갈 것으로 예측된다. 지난해 주춤했던 AMD 역시 올해 AI GPU 제품을 대폭 늘려 AI 훈풍을 누릴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