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이 내년부터 하이(High)-NA 극자외선(EUV) 노광기를 1나노대 반도체 생산에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하이-NA EUV는 대당 5000억원에 달하는 최고가 반도체 장비로 ‘명품 EUV’로 불린다. 기존에 삼성전자, TSMC 등이 보유한 EUV 장비보다 가격이 2배 이상 비싸며 그만큼 뛰어난 성능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글로벌 반도체 기업 중 하이-NA EUV를 보유하고 있는 기업은 인텔뿐이다.
인텔은 지난 15일 미디어라운드테이블에서 “당초 기대보다 빠른 속도로 하이-NA EUV 장비를 안정화하고 있으며, 생산라인에 본격적으로 투입하는 시기를 내년으로 앞당길 수 있게 됐다”며 “14A(1.4나노) 반도체 공정부터 하이-NA EUV가 본격적으로 활용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인텔은 지난해 업계 최초로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회사 ASML로부터 하이-NA EUV 장비를 공급 받았고, 이후 4개월간 기대 이상의 테스트 결과를 얻어낸 것으로 알려졌다. 마크 필립스 인텔 펠로우는 “인텔은 업계 최초로 하이-NA EUV 툴을 확보해 비용 효율적으로 ‘무어의 법칙’을 가져갈 수 있게 됐다”며 “테스트 과정을 통해 수율 향상을 확인했고, 생산 공정 프로세스가 축소된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하이-NA EUV를 테스트, 생산 공정에 설치 중이며 2025년부터 양산 라인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이-NA와 로우-NA는 각각 ASML 제품명을 기준으로 EXE, NXE 시리즈라고 불리는 EUV 장비를 말한다. 하이-NA는 노광 렌즈 수치(NA)가 0.55로 로우-NA(0.33)보다 높다. NA가 높으면 빛의 파장이 더욱 정교해지고 해상도가 향상돼 더 미세한 회로를 그리는 데 유리하다. 문제는 비용이다. ASML이 책정한 판매가는 하이-NA 3억8000만달러(약 5050억원), 로우-NA 1억8300만달러(약 2420억원)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의 경우 이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D램 생산라인에 로우-NA EUV 장비를 다수 보유하고 있지만, 아직 하이-NA EUV는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다. 오는 2027년쯤에나 하이-NA EUV를 도입할 예정인데, 내년에 인텔이 하이-NA EUV를 먼저 도입할 경우 2년이 뒤처지는 셈이다. 하이-NA를 확보해 안정화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문가들은 2~3년의 격차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다만 삼성전자 측은 하이-NA EUV 장비가 투자 비용 대비 효율성 측면에서 아직 신뢰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강영석 삼성전자 DS부문 펠로우는 지난 2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호세에서 개최된 세계 최대 광공학회 ‘SPIE 2024′ 기간 중 ‘EUV의 미래’라는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에서 “하이-NA 도입이 유일한 대안은 아니며, (대규모) 투자를 결정하기 전에 장비의 특성을 상세히 살펴보고 투자 대비 효과도 철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부터 파운드리 사업을 강화하고 있는 인텔은 EUV 장비를 바탕으로 외부 고객사 확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인텔은 2022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오하이오, 독일 마그데부르크, 아일랜드 레익슬립 등 신규 반도체 생산 시설과 미국 애리조나주 챈들러 소재 생산시설 확충 등에 약 930억달러(약 123조6528억원)를 투입했다. 또 1.8나노급 ‘인텔 18A’ 공정에서는 이미 5개 고객사를 확보하고 잔고 수주 물량이 150억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