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이 패배하면서 정부가 추진해왔던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폐지’가 동력을 잃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달 초 단통법 폐지 등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계류 중인 상태다. 단통법 폐지가 우선순위에서 밀려 논의가 중단되면 시행령으로 먼저 시작한 전환지원금 지급도 폐지되거나 사문화될 가능성도 있다.
11일 통신 업계에 따르면 22대 총선이 야권의 승리로 끝나면서 단통법 폐지를 골자로 한 정부와 여당의 가계통신비 정책에 빨간불이 켜졌다. 법을 개정해야 하는 단통법의 경우 야당의 동의가 필수인 만큼 오는 5월 30일 새롭게 시작하는 22대 국회까지 논의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그동안 야당은 단통법 폐지에 일정 부분 동의했다. 정보통신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전신) 차관을 지낸 5선 변재일 의원이 단통법 폐지에 앞장서면서 더불어민주당의 통신비 공약에 단통법 폐지 관련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변 의원이 공천 과정에서 낙마, 야권에서 호응할 인물이 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 단통법 폐지 중단되면 전환지원금 존폐 위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민주당 간사이자 단통법 폐지에 신중한 입장을 보인 조승래 의원이 22대 총선에서 당선하면서 단통법 폐지는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조 의원은 지난 1월 성명을 통해 “정부가 느닷없이 들고 나온 단통법 폐지는 총선을 앞두고 급조한 표 구걸용 포퓰리즘에 불과하다”라며 “정부는 단통법 폐지에 따라 야기될 부작용과 문제에 대해 어떠한 대안, 대책도 제시하지 않았다”라고 했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단통법 폐지는 총선용 정책이라는 평가가 많았는데, 표심을 자극했던 정책을 정부와 여당이 계속 추진할까 의문”이라며 “총선 결과도 좋지 않게 나온 상황에서 여당이 굳이 야당의 협조를 받아야 하는 단통법 폐지에 속도를 낼 필요성을 못 느낄 것 같다”라고 했다.
단통법 폐지가 중단될 경우 전환지원금은 존폐 위기에 놓일 수 있다. 전환지원금은 소비자가 번호를 이동할 때 최대 50만원을 통신사가 지급하는 보조금을 말한다. 정부는 전환지원금이 시장 경쟁을 활성화시켜 가계통신비 부담이 낮아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실제로는 효과가 거의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김주호 참여연대 민생경제팀장은 “전환지원금은 총선용이라는 비판을 넘어 가계통신비 인하 효과가 크지 않다는 게 입증됐다”라며 “통신사도 더 이상 전환지원금으로 경쟁하려고 하지 않는 만큼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 같다”라고 했다.
◇ 野, 전환지원금 강력 반대… 군인 통신요금 할인·잔여 데이터 이월 추진 여부 관심
야당은 전환지원금 도입을 강하게 반대했다. 총선용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비판과 함께 단통법이 폐지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행령 개정으로 법의 취지를 무력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는 “전환지원금은 지속 가능하지 않은 나쁜 관치가 만든 제도로 없어져야 하고, 없어질 것으로 본다”라고 했다.
오히려 야당이 총선 공약으로 내세운 병사 통신요금 할인율 인상(50%), 잔여 데이터 이월, 통신비 세액공제 신설 등이 22대 국회에서 추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다만 이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과거 총선에서도 공공 와이파이 확대, 단말기 완전자급제 도입 등 통신 관련 공약이 많았지만 현실화된 사례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방효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보통신위원회 위원장은 “공약은 국민들에게 한 약속인 만큼 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추진돼야 한다”라며 “여야가 단통법 폐지, 전환지원금 등 특정 정책이 아닌 다양한 통신 정책을 아우르는 복합적인 논의 및 설계로 가계통신비 부담을 낮추는 데 힘을 합치길 바란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