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기의 초박형 FC-BGA./삼성전기 제공

반도체의 전기적 신호를 전달하는 회로 부품인 기판 수요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 인공지능(AI)을 구동하는 데 쓰이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첨단 제품을 제외한 반도체 업황 회복이 더디기 때문이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삼성전기와 LG이노텍 기판 사업의 실적 개선이 지연될 것으로 예상된다. 심텍과 대덕전자의 연간 영업이익 전망치도 최근 하향 조정되는 추세다.

전자부품업계 관계자는 “HBM과 고사양 D램인 DDR5, LPDDR5X·T 등을 제외한 기존 제품군의 재고는 상당한 상황”이라며 “낸드플래시도 올해 2~3분기를 지나며 수요가 확대될 것으로 보여 기판 등 부품 공급이 본격화되기까지 시간이 다소 소요될 것”이라고 했다.

◇ 삼성전기·LG이노텍, FC-BGA 선제적 투자… “수요 개선 조짐 없어”

삼성전기와 LG이노텍은 플립칩 볼그리드 어레이(FC-BGA)를 신성장동력으로 낙점하며 시설투자를 진행했다. 삼성전기는 지난 2022년 2조원에 달하는 금액을 들여 FC-BGA 시설투자를 단행했고, LG이노텍도 같은 해부터 약 4000억원을 쏟아부어 생산시설을 확충했다. FC-BGA는 고성능 반도체 칩과 메인 기판을 연결하는 고사양 PCB다. PCB는 전기적 신호를 전달할 수 있는 회로 부품으로 가전제품부터 스마트폰 등 대다수 전자기기에 사용된다.

하지만 지난해 삼성전기와 LG이노텍의 기판 사업은 반도체 업황 부진에 발목을 잡혔다. 지난해 삼성전기의 패키지솔루션 사업부 매출은 1조7173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할 때 17% 하락했고, LG이노텍의 기판소재사업부 매출도 전년 동기 대비 22% 감소한 1조3221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실적 개선 폭도 가파르진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는 올해 두 기업의 기판 사업 관련 영업이익은 지난해와 유사하거나 10%가량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박형우 SK증권 연구원은 “PC를 제외하면 아직 기판 수요 개선 조짐이 포착되지 않아 삼성전기의 기판 수요 반등은 2분기를 지나야 확인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현지 DB투자증권 연구원도 “시장 예상 대비 LG이노텍 기판소재 사업부의 부진이 장기화되고 있어 연간 실적 하향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했다.

그래픽=손민균

◇ 영업이익 급감한 심텍·대덕전자, 올해 전망치도 하향 조정

기판 전문업체인 심텍과 대덕전자도 지난해 반도체 업황 침체와 맞물려 실적에 타격을 입었다. 심텍은 글로벌 인쇄회로기판(PCB) 시장 점유율 30%를 차지하고 있다. 심텍은 2022년 매출 1조6975억원과 영업이익 3524억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지난해 적자전환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심텍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에 모바일 메모리(MCP)와 DDR4, GGDR6용 PCB를 주로 공급하고 있다.

대덕전자는 고부가 반도체 기판 FC-BGA 분야 국내 1위다. 대덕전자도 2022년 2325억원이었던 영업이익이 지난해 237억원에 그치며 89%나 줄었다. 대덕전자의 지난해 매출은 9096억원으로 2022년(1조3162억원)과 비교해 31%가 줄었다. 대덕전자는 현재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에 PCB와 FC-BGA를 납품하고 있다.

고의영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심텍과 관련해 “PC와 서버, 전장 등 주요 공급처의 수요 개선이 늦어져 실적 개선 폭이 시장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며 “올해와 내년도 영업이익을 기존 전망치 대비 각각 39%, 23% 하향한 580억원, 1210억원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양승수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대덕전자와 관련해 “현재 시장이 기대하는 회복 속도와의 괴리가 존재한다”며 “AI 관련 하이엔드 제품을 제외하면 본격적인 수요 회복이 관찰되지 않는 상황이라 대덕전자의 실적 개선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