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게임 이용자 권익 보호 방안을 내놓았다. 게임사들에게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와 최소 30일 이상의 환불 전담 창구 운영을 의무화했고, 소액사기 전담 수사 인력 구성 및 동의의결제 도입으로 게임 이용자 피해를 구제하겠다고 했다. 그동안 자율규제로 운영되던 부분이 의무화되면서 게임업계에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30일 경기 성남 판교 제2테크노밸리 기업지원허브에서 '상생의 디지털, 국민권익 보호' 를 주제로 열린 일곱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대통령실 제공

이날 정부는 경기 성남 판교 제2테크노밸리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이 같은 내용을 공개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게임 산업은 연간 매출이 22조원을 넘어 영화, 음악 등 어떤 콘텐츠보다 막대한 시장 규모를 갖고 있다”면서 “게임 산업 육성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소비자 보호”라고 말했다.

다음 달 22일부터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 제도가 본격 시행된다. 정부는 게임물위원회에 24명 규모의 ‘확률형 아이템 모니터링단’을 설치해 확률 정보 모니터링과 1차 검증 업무를 맡길 예정이다. 또 공정거래위원회가 온라인·모바일 게임 표준약관을 보완해 게임 출시 후 조기에 서비스를 중단할 경우에도 최소 30일 이상 환불 절차를 진행하도록 했다.

이용자 보호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한 대책도 마련됐다. 게임 아이템 소액사기를 근절하기 위해 전국 150개 경찰서에 수사 인력 200여명으로 구성된 수사 전담 인력을 지정해 게임 사기 처리 기간을 단축하겠다는 것이다. 이용자가 국내 법인이 없는 해외 게임사에게도 보상을 빠르게 받을 수 있도록 전자상거래법에 동의의결제를 도입한다.

나아가 문화체육관광부와 공정위는 추가 입법을 통해 국내에 주소나 영업장이 없는 해외 게임사에 대해 국내 대리인 지정 의무를 부여하고, 자체 등급 분류사업자와 협업해 법 미준수 게임물의 유통 금지를 추진할 방침이다. 해외 게임사에게도 국내 게임사들처럼 이용자 보호의무를 부여하겠다는 구상이다.

게임업계에서는 실효성에 의문을 표하고 있다. 국내 대리인 제도를 통해 해외 게임사에 의무를 지우겠다는 건 효과가 없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한 국내 게임사 관계자는 “국내 업체들은 대부분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나 조기 서비스 종료 게임에 대한 환불 절차를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면서도 “대리인 제도가 해외 게임사들의 협조를 이끌어낼지 미지수”라고 했다.

또다른 업체 관계자도 “국내 대리인 제도가 마련되는 건 환영하지만, 잘 운영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국내 게임사들이 겪고 있는 역차별이 해소됐다는 생각이 안 든다. 오히려 자율적으로 운영되던 부분이 법으로 강제되면서 부담만 가중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확률 조작 논란에 휩싸인 중국 유조이게임즈의 '픽셀 히어로'./유조이게임즈 제공

실제 국내 이용자들에게 피해를 준 게임 대부분 해외 업체의 작품이다. 중국 유조이게임즈의 ‘픽셀히어로’가 출시 2개월 만인 지난해 8월 유료 뽑기 상품의 확률을 조작했다는 논란에 휩싸인 게 대표적이다. 지난 2022년 홍콩 게임사인 디밍게임즈는 모바일게임 배틀삼국지의 한국 서비스를 출시 1년 만에 종료하고 유료 아이템 환불 내용을 안내하지 않아 ‘먹튀’ 논란에 휩싸였다.

김성회 게임유튜버는 이날 토론회에서 “먹튀 등의 일은 해외의 작은 게임사들일수록 많이 나타나는 경향이 있는데, (다른 산업에서) 국내 대리인 제도가 있지만 유명무실하다”면서 “지금 국내 대리인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법안은 국회에서 계속 계류 중”이라고 했다. 전병극 문체부 1차관도 전날 개최된 브리핑에서 “국내 대리인 제도 적용은 법안 개정이 돼야 하는 상황”이라며 “법안 개정을 추진 중이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이미 자정된 국내 게임사들의 과오를 꺼내어 칼을 겨누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김정태 동양대 게임학부 교수는 “확률형 아이템, 먹튀 등은 이미 국내 게임사들이 충분히 준비하고 있어 걱정할 필요가 없다”면서 “그럼에도 과거 사례를 싸잡아 불공정 사례라고 말하는 것은 정부의 게임에 대한 몰이해 때문”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현재 국내 게임사들은 중국 진출에 어려움을 겪고 e스포츠 ‘한한령(限韓令)’까지 나오는 상황”이라면서 “다수의 게임사들이 구조조정에 들어가는 등 게임업계가 위축된 상황에서 정부가 게임업계를 어떻게 도울지 논의하지는 못할 망정 잘 하고 있는 국내 업체들을 다그치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