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메모리 기업들이 올해 양산하는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3E)가 전량 주문 완료된 가운데,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인 HBM4 시장 선점을 위한 기술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내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들도 이르면 내년 진행될 메모리 기업의 HBM4 양산 계획에 발맞춰, HBM4 생산에 투입될 제품 공급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9일 업계에 따르면 HPSP와 이오테크닉스, 솔브레인 등 ‘하이브리드 본딩’에 필요한 장비와 소재를 보유한 기업의 제품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의 HBM4 생산에 투입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하이브리드 본딩은 D램과 D램 사이의 가교 역할을 했던 범프 없이 칩을 접착시키는 차세대 패키징 기술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메모리 기업들이 이를 적용하기 위한 기술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HBM은 D램과 D램을 수직으로 적층해 개발한 제품이다. HBM4는 D램을 16단까지 쌓아 올린다. 지난해 고객사에 공급된 제품인 HBM3는 12단으로, 여기에 4단을 추가로 올리는 것이다. 층이 늘수록 제품 크기가 커질 수밖에 없지만, 공간 효율을 중요시하는 고객사의 요구에 메모리 기업들은 제품 크기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하이브리드 본딩의 경우 범프 없이 HBM을 생산해 제품의 두께를 줄일 수 있어 핵심 기술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HPSP의 주력 제품은 고압 수소 어닐링 장비이다. 어닐링 장비는 반도체 소자 내 접합부의 결함을 줄여 소자의 특성과 성능을 높이는 데 사용된다. HPSP의 어닐링 장비는 하이브리드 본딩의 마지막 단계에 속하는 어닐링 과정에 투입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하이브리드 본딩 어닐링 과정은 다이와 웨이퍼를 영상 400도가량 열을 가해 결합하는데, 이 과정에서 얇아진 금속층이 훼손되지 않도록 어닐링을 진행해야 한다. HPSP의 어닐링 장비가 이를 구현할 수 있어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반도체 장비업계 관계자는 “연구 단계에서 HPSP 어닐링 장비가 하이브리드 본딩에 활용돼 효과를 입증한 것이 사실”이라며 “상용화 시점은 고객사가 사업성 등을 다각도로 검토한 뒤 이뤄지기 때문에 섣불리 예측하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곽민정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어닐링 과정에서 금속층에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장비를 보유한 유일한 기업”이라고 했다.
이오테크닉스는 레이저 공정 장비를 생산한다. 이오테크닉스가 보유한 장비들 중 ‘레이저 스텔스 다이싱(Raser Stealth Dicing)’ 장비가 하이브리드 본딩 공정에 투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이싱은 전체 웨이퍼를 반도체 칩 단위로 잘라내는 작업이다. 이오테크닉스의 레이저 다이싱 장비는 기존 다이싱 방법과 달리 비접촉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한다. HBM을 적층할 때 웨이퍼를 얇게 가공하기 때문에 칩이 외부 충격에 쉽게 취약해지는데, 레이저 다이싱 장비는 직접 접촉 방식이 아닌 레이저 에너지로 웨이퍼를 절삭해 칩의 손상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평가를 받는다. 송명섭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HBM4는 16단으로 적층되는 구조로 D램의 수가 늘어나 D램 두께도 얇아져야 한다”며 “칩 손상 없이 칩을 잘라낼 수 있는 스텔스 다이싱 장비의 수요가 확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솔브레인은 HBM용 화학적기계연마(CMP) 슬러리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에 공급하는 소재 전문업체다. CMP 슬러리는 웨이퍼 표면을 평탄화하는 작업인 CMP 공정에 활용되는 연마제다. 하이브리드 본딩 초기 단계인 반도체 칩 표면 가공 시에 칩의 두께를 줄이기 위한 CMP 공정이 필수적으로 적용되는데, 이에 따른 CMP 슬러리 투입량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류형근 삼성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후공정에서 활용될 하이브리드 본딩에 솔브레인의 CMP 슬러리가 투입돼 CMP 슬러리 관련 사업이 구조적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