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 3사의 독과점 구조를 깨고 가계 통신비 부담을 낮추기 위한 정부의 ‘제4이동통신’ 사업자 모집에 지원한 기업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달 19일까지 접수가 진행되고 통상 접수 마감을 앞두고 신청이 몰리지만, 이번에도 제4통신사 유치 가능성은 낮다는 게 통신 업계의 평가다. 통신 3사가 포기한 28㎓(기가헤르츠) 주파수를 활용해 신규 사업자가 수익을 얻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제4통신사 유치를 위해서는 28㎓ 활용 콘텐츠 투자와 중저대역 주파수 지급 등 전향적인 지원책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통신 업계 등에 따르면 이날 기준으로 제4통신사 신청 기업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마감까지 시간이 조금 더 남아있고, 이전에도 마감 직전에 신청이 몰린 만큼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라며 “현재 시점에서 신청한 곳은 없다”라고 했다.
과기정통부는 지난 7월 통신 3사가 포기한 5G(5세대 이동통신) 주파수 28㎓(기가헤르츠) 대역 800㎒폭(26.5〜27.3㎓)과 앵커주파수 700㎒ 대역 20㎒폭(738〜748/793〜803㎒)에 대한 주파수 할당을 공고했다. 28㎓ 주파수를 활용해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4통신사를 뽑겠다는 의미다. 모집은 지난달 20일 시작해 오는 19일까지 진행된다.
◇ 성장 가능성 낮은 포화 시장, 수익성 낮아
정부가 제4통신사를 찾는 건 국내 통신 시장의 95%(알뜰폰 자회사 포함)를 점유한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의 독과점 구도를 깨기 위해서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7차례(2010~2015년)에 걸쳐 제4통신사 유치를 시도한 것과 같은 이유다. 하지만 7차례 실패에서와 같이 이번에도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통신 시장이 포화상태에 접어든 상황에서 신규 사업자가 시장을 장악한 통신 3사와의 경쟁에서 수익을 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 국내 휴대폰 회선 수는 5620만개로 국내 인구 수 5171만명(추계)를 넘어선 상태다.
통신 3사의 한 임원은 “통신사가 돈을 많이 번다고 생각하지만, 통신 관련 영업이익률은 7% 수준으로 크지 않다”라며 “통신사들이 생존을 위해 비통신 사업을 키우는 상황에서 비통신 기업이 굳이 통신 사업에 뛰어들 이유가 있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통신사 관계자도 “통신은 대규모 초기 투자가 필요하지만 공공성을 갖고 있어 정부의 강력한 규제를 받는다”라며 “수익을 추구하는 기업 입장에서 규제를 받는 투자 산업이 크게 매력적이지 않을 것 같다”라고 했다.
네이버, 한화시스템, 쿠팡, KB국민은행, 토스(바바리퍼블리카) 등이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지만 제4통신사에 도전할 의사는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네이버 관계자는 “플랫폼 기업으로서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인 만큼 통신 사업에 투자할 여력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지는 않다”라고 했다. 쿠팡도 내부적으로 통신 사업 진출 계획을 검토하고 있지 않는 상황이다.
한화솔루션은 위성통신사업 진출을 위해 지난 7월 과기정통부에 ‘기간통신사업자’ 등록을 마쳐 주파수 할당 신청 가능성이 큰 후보로 꼽혔지만 28㎓ 주파수를 활용한 제4통신사 모집에는 신청하지 않기로 했다. 2019년 MVNO(알뜰폰) 사업에 진출한 KB국민은행의 경우 알뜰폰 사업에 집중한다는 의지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현재는 알뜰폰 사업 관련 부수 업무 추진에 집중하고 있다”라고 했다. 토스도 내부적으로 검토는 하지만 신청은 하지 않는 것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세종텔레콤 역시 28㎓ 사업 신청에 나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굳힌 상태다.
◇ 중저대역 주파수 함께 지급하고 할당 대가 낮춰야
전문가들은 정부가 28㎓ 대역 주파수를 활용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중저대역 주파수를 함께 지급하거나 VR(가상현실), AR(증강현실) 등 직간접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시장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용희 동국대 영상대학원 교수는 “28㎓를 할당받을 사업자에게 전파 도달 범위가 더 넓은 언더 식스(6㎓ 이하의 중저대역 주파수)를 함께 지급해 수익성을 보전해주는 방식으로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라고 했다. 김병준 카톨릭대 경영학부 교수는 “28㎓ 주파수를 활용할 환경을 먼저 조성해 줘야 한다”며 “VR, AR을 비롯한 킬러 콘텐츠를 개발할 국내외 사업자들을 지원하면 28㎓ 대역 주파수에 대한 업계의 관심도 커질 것”이라고 했다.
주파수 할당 대가와 기지국 의무 구축 수를 전향적으로 낮출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있다. 정부는 제4통신사를 유치하면서 전국 단위 기준 최저 경쟁 가격 742억원, 기지국 장비 의무 구축 6000대를 내걸었지만, 신규 사업자 입장에서는 이마저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방효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보통신위원회 위원장은 “제4통신사 진입을 유도해 통신 3사의 독과점을 깨기 위해서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워야 한다”라며 “현재와 같은 조건으로는 신규 사업자 들어오기 힘들다고 본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