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후 대구 수성구청 무인발급창구가 국가정보자원 네트워크 장비 오류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 /연합뉴스

민원 서류를 발급하는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행정 전산망인 새올지방행정정보시스템(이하 새올)과 온라인 민원서비스 정부24가 이틀간 먹통이 됐다가 복구됐다. 정부 발급 서류가 필요한 은행, 부동산 거래가 사실상 중단됐고 전입신고도 되지 않았다. 정보통신(IT) 강국의 민낯이 그대로 노출된 사태다. 이번 사태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기업의 공공 소프트웨어(SW) 사업 참여 기회 제한과 유지 보수에만 집중하는 관리 방식 등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소기업에 비해 경험이 풍부한 대기업이 참여해야 전산망 오류 등 리스크를 줄일 수 있고, 클라우드 환경에서 프로그램을 관리할 수 있는 ‘클라우드 네이티브’을 도입해야 문제가 생겨도 빠르게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새올은 보안패치를 업데이트하는 과정에서 네트워크 장비가 고장이 나면서 인증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재까지 이번 먹통의 정확한 원인은 파악되지 않았다. 행정 전산망 먹통은 해결됐지만, 여전히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면서 향후 유사한 문제가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 전산망 오류는 올해 들어서만 세번째 일어났다. 지난 3월 법원 전산 시스템이 마비되면서 일부 소송 일정이 미뤄졌고, 지난 6월에는 교육부의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인 나이스(NEIS)가 개통 직후 오작동으로 일부 학교에서 기말고사 문항이 유출되는 등 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공공 전산망 오류가 잇따르고 있지만 정부는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공 소프트웨어(SW) 사업에서 대기업의 참여를 제한하는 제도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13년 마련된 소프트웨어 진흥법은 국가안보, 신기술 분야 등을 제외하고는 일정 규모 이상의 대기업 참여를 제한하고 있다. 규모가 1000억원이 넘는 프로젝트에만 대기업의 사업 참여를 허용하고 있다. 연 매출이 8000억원 이상인 대기업은 80억원, 매출액이 8000억원 미만인 대기업은 40억원 규모 이상의 사업부터 참여할 수 있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대기업이 소프트웨어 제작 기술이나 유지 등에 있어 중소기업보다 우월한 상황에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중소기업의 성장도 중요하지만 정부가 운영하는 전산망은 국민들의 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기업 규모로 사업 참여 가능 여부를 구분지어서는 안 된다”라고 했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모든 국민이 폭넓게 사용하는 전산망 관련 사업에 대해서는 국가적 혼란을 막기 위해 대기업 참여 기회를 늘려줘야 한다”라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컨소시엄을 이루는 방식으로 사업에 참여하게끔 하는 방식도 고려해볼 수 있다”라고 했다.

현재 공공 SW 관리 방식이 인프라 전환에만 치중되면서 문제를 빠르게 복구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현재 각 부처에 쓰는 소프트웨어를 사업에 선정된 기업으로부터 납품받아 사용하고, 이후에는 유지 보수에만 주력하고 있다. 지속적인 업데이트 없이 유지 보수에만 주력하는 만큼 오류를 막고, 빠르게 해결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조준희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회장은 “소프트웨어가 안정적으로 운영되려면 지속적인 업데이트가 필요하다”라며 “유지 보수에 집중하는 현행 운영 방식으로는 오류를 비롯한 문제를 막기가 어렵다”라고 했다.

이에 따라 클라우드 네이티브 방식이 문제 해결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클라우드 네이티브는 인터넷만 연결돼 있으면 클라우드 환경에서 신속하게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업데이트까지 진행할 수 있는 방식이다. 직접 프로그램을 설치할 필요가 없어 서비스 품질을 쉽게 개선할 수 있고 오류도 줄일 수 있다. 신영웅 우송대 정보보안학과 교수는 “클라우드 네이티브 방식을 채용하면 전문성을 갖춘 클라우드 업체가 프로그램 설치와 업데이트를 대신 맡아줄 수 있다”라며 “전산망 오류가 발생했을 때 빠른 업데이트로 신속하고 안정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라고 말했다. 조준희 협회장은 “정부가 2030년까지 공공 시스템을 클라우드 네이티브로 전환하겠다는 목표를 밝혔지만 너무 늦다”라며 “국민들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 전환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