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인치 GaN 전력반도체 웨이퍼. /imec 제공

한국과 중국 반도체 기업들이 실리콘카바이드(SiC), 질화갈륨(GaN) 등 차세대 전력 반도체 시장에서 맞붙는다. 2025년부터 전 세계적으로 전력반도체 8인치 웨이퍼(반도체 원판) 생산이 본격화하면서 양국 기업의 시장 선점 경쟁도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22일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전력반도체 소자·모듈 시장에서 중국은 연평균 8.1%의 성장률로 일본, 미국, 유럽에 이어 4번째로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시장 규모 측면에서는 2020년 88억달러(11조4919억원)에서 2024년 120억달러(15조6684억원) 수준의 규모로 커질 것으로 보인다.

전력반도체는 각종 전자제품 안에서 전력을 분배하는 역할을 맡는다. 불필요한 전력 손실을 최소화해 제품을 더 오래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부품이다. 전력반도체는 에너지 효율이 중요한 데이터센터, 자율주행차 등을 중심으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현재 전력반도체에는 Si(규소) 소재가 주로 쓰이고 있는데, 내구성과 전력 효율이 더 뛰어난 SiC, GaN 소재의 차세대 전력반도체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2025년을 목표로 전력반도체 양산을 계획하고 있다. 2025년부터 기존 6인치에서 더 커진 8인치 전력반도체 웨이퍼 생산이 본격화 되면서 생산 효율이 높아져 기업들의 수익성도 커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에 중국은 2021년부터 전력반도체 분야 육성을 국가 사업으로 두고 적극적인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는 올해 약 4조원을 투자해 SiC 전력반도체 생산능력 강화를 위해 중국 기업 삼안광전과 합작해 제조 공장을 건설했다.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는 이 공장에서 2025년 4분기부터 제품을 생산하고 2028년에는 전체 증축을 마칠 방침이다. 삼안광전은 현재 중국 정부의 집중적인 지원을 통해 SiC와 GaN 반도체 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이번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의 공장 건설도 중국정부 지원의 일환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다른 전력반도체 기업인 실란은 지난해 SiC 전력반도체 생산라인의 설치를 마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실란의 전력반도체 6인치 웨이퍼 생산량은 2000장 수준인데 올해 연말까지 6000장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국내 기업도 전력 반도체 관련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는 DB하이텍과 SK하이닉스에 이어 전력반도체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삼성전자는 최근 진행한 파운드리 포럼에서 데이터센터 컨슈머, 자율주행차용 8인치 GaN 전력반도체 파운드리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지난 3월 ‘전력반도체 태스크포스(TF)’를 신설하기도 했다. 전력반도체 설계와 생산 공정의 사업 가능성을 검토하기 위해서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자회사 키파운드리를 인수하고 2025년 생산을 목표로 8인치 GaN 전력반도체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이달부터 DB하이텍도 2028년 양산을 목표로 8인치 SiC 전력반도체 웨이퍼 개발에 들어갔다. DB하이텍은 GaN 전력반도체 웨이퍼 개발도 진행하고 있는데 2025년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전력반도체의 시장의 규모가 커지는 가운데 업계에서는 중국 기업에 차세대 반도체 분야의 패권을 뺏기지 않기 위해 적극적인 투자와 개발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KDB미래전략연구소는 글로벌 전력반도체 시장 규모가 2019년 450억달러(58조7250억원)에서 올해 530억달러(69조1650억원)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강성철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연구위원은 “자율주행 차량을 중심으로 전력 반도체 수요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며 “중국이 전력 반도체 시장을 선도하게 되면 글로벌 시장 전반에서 국내 반도체 기업의 영향력이 줄어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내 업체들은 전력 반도체 분야에 대한 선제적인 투자로 시장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