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국의 첨단 반도체 개발을 막기 위해 대(對)중국 제재를 강하게 밀어붙이면서 중국에 진출한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사업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반도체법’ 세부 지침이 이르면 이달 중 나올 것으로 알려져 업계의 불안감이 고조됐다.

삼성전자(005930)SK하이닉스(000660) 등 중국 내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는 반도체 기업들의 우려가 잇따르는 가운데 경제 안보전문가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경제안보팀장은 지난 15일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궁극적으로 한국 기업이 중국에서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를 만드는 건 불가능해진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제시한 데드라인은 3~5년. 연 팀장은 “미국은 자국 시간표에 맞춰 중국의 반도체 신기술 개발을 완전히 봉쇄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공장에 대한 규제 유예 조치도 5년 이내에 중단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연 팀장의 주 연구 분야는 미·중 통상과 국가 간 반도체 기술 패권 경쟁이다. 그는 지난해 미국이 대중 반도체 규제를 본격적으로 내놓기 시작할 때부터 미국 워싱턴DC에 오가며 미 상무부 관계자와 소통하고 있다. 연 팀장은 “비관적이지만 유예 조치 중단을 상수로 두고 우리 정부가 칩4(한국·미국·일본·대만이 모인 반도체 협의체) 회의에서도 적극적으로 수출 통제 관련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했다.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경제안보팀장이 지난 15일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지희 기자

◇ “가드레일 세부 지침, 작년 10월 규제 조치에 준할 듯”

미국의 지원을 받으면 10년간 중국 투자가 제한되는 반도체법 ‘가드레일’ 조항의 구체적인 지침과 관련해 연 팀장은 지난해 10월 7일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대중 반도체 수출 통제 조치 수준에 준할 것으로 내다봤다. 미 반도체법 가드레일 조항에 따르면 미국의 보조금 등을 받은 수혜 기업은 향후 10년간 중국 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분야에서 28㎚(나노미터·10억분의 1m) 미만 첨단 기술 관련 신규 투자를 할 수 없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에 진출한 분야인 메모리 반도체와 패키징(후공정)에 대한 투자 규제는 미 상무부가 향후 2년 이내에 별도 기준을 마련하도록 했다.

이 기준이 빠르면 이달 중 나올 수 있다고 알려지면서 업계의 긴장감이 높아졌으나, 연 팀장은 “반도체법 세부 지침은 지난해 10월 발표한 수출 통제 수준에서 더 나아가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는 “국내 산업계가 직면한 더 큰 문제는 지난해 10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받은 규제 1년 유예 조치”라며 “미국의 현 기조를 보면 우리 기업이 앞으로 받을 수 있는 유예 기간이 그리 길지는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연 팀장은 “미 상무부와 얘기해 본 결과, 미국이 지난해 10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중국 공장에 반도체 장비를 들이는 것을 1년간 허용한 것은 굉장히 이례적이고 다분히 임기응변적으로 내려진 조치였다”며 “1년의 유예 기간 동안 미국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 큰 타격을 입히지 않으면서 한국과 대만이 대중 제재에 동참하도록 하는 타임 테이블(시간표)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작년 5월 20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시찰하며 엄지 손가락을 들어보이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 “더 큰 문제는 유예 종료 머지않은 것”

연 팀장은 “당시 미국의 유예 결정이 없었다면 삼성과 SK하이닉스는 즉각 생산 차질이 발생할 만큼 중차대한 상황이었다”며 “다행히 시간을 벌었으나, 현지 장비를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시점이 오는 3~5년 이내에 중단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7일 미국 상무부는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그해 8월 서명한 반도체법과 별개로 대중 반도체 수출 통제 조치를 발표했다. 18㎚(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 플래시, 16㎚ 이하 로직칩을 생산할 수 있는 장비와 기술을 중국에 판매할 경우 상무부의 별도 허가를 받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발표 사흘 뒤 미국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 인텔, 대만 TSMC의 중국 공장에 1년간 규제 적용을 유예하기로 했다. 이들 4개 기업에만 우선 올해 10월까지 미국의 별도 허가 없이 중국 내 공장에 필요한 반도체 장비를 들일 수 있게 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서 낸드플래시 전체 출하량의 약 40%를 생산하고, 쑤저우에서 후공정(패키징) 공장을 운영 중이다. SK하이닉스도 D램의 약 50%를 중국 우시 공장에서 만들고, 지난해 인텔로부터 인수한 낸드플래시 공장을 중국 다롄에 두고 있다.

연 팀장의 전망처럼 최장 5년 이내에 미국의 유예 조치가 중단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에서 차세대 메모리를 만들 수 없게 된다. 연 팀장은 “삼성이나 SK하이닉스가 중국에서 첨단 메모리를 만들지 못하면 결국 시장 경쟁력을 잃게 되기 때문에 중국 내에서 계속 생산을 이어가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고 짚었다.

연 팀장은 한국이 어정쩡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칩4에서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했다. 그는 “칩4에서 대만 대표부가 공급망 안정화와 관련해 자국 이익이 최대한 반영되게끔 참여하겠다고 말한 것처럼, 한국도 이 협의체를 적극 활용해 국내 업계가 우려하는 가드레일이나 지난해 10월 조치 등에 대해서 협상을 벌여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