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컴퍼니가 개발한 엣지 그라인더가 작동하는 모습. /김민국 기자

지난 7일 경기 화성시에 있는 미래컴퍼니 연구동에서는 직원 10여명이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한 연구원은 부품이 쌓여 있는 선반을 뒤적거리고 있었고 그 옆에 있던 연구원은 모니터를 유심히 지켜보며 기계 작동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 다른 연구원은 장비 앞에 선 채 정상 작동 여부를 확인한 뒤, 작동을 마친 장비에서 결과물을 꺼내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기도 했다. 이들이 연구하는 장비는 디스플레이 패널의 단면을 가공하는 ‘엣지 그라인더’다. 패널 가장자리를 가공하지 않으면 폼팩터(form factor, 제품의 물리적 외형)에 삽입하는 데 문제가 생기고 화면의 내구성도 떨어져 생산 공정에 있어 필수적인 장비로 여겨진다. 실제로 엣지 그라인더의 가공을 거치면 패널의 내구성이 50% 이상 상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엣지 그라인더 옆에는 수십장이 넘는 디스플레이 패널이 쌓여있었다. 한 연구원이 한 장의 패널을 집어 엣지 그라인더에 올려두자 신호음과 함께 가공 작업이 시작됐다. 깎아내는 역할을 하는 다이아몬드 휠이 패널의 가장자리를 다듬으면 6개의 호스가 물을 뿜어 파편을 씻어냈다.

미래컴퍼니가 개발한 홀 드릴링 장비가 작동하고 있는 모습. /김민국 기자

엣지 그라인더의 옆에는 미래컴퍼니가 지난 2015년 세계 최초로 개발한 홀 드릴링 장비가 가동 중이었다. 정보기술(IT) 기기의 베젤(화면 테두리)이 좁아지면서 화면 위에 카메라가 자리 잡게 되자, 패널에 구멍을 뚫어야 할 필요성이 생기며 탄생한 장비다. 엣지 그라인더의 일종이지만 패널이 깨지지 않게 구멍을 내야 하는 만큼 더 높은 기술이 요구된다. 연구원이 홀 드릴링 장비에 직사각형 모양의 패널을 올려놓자 팔 모양의 드릴이 즉시 작업을 시작했다. 드릴이 구멍을 뚫는 동작은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미세했다. 그러나 가공이 완료된 패널 위에는 온전한 구멍 2개가 뚫려 있었다. 장비를 담당하는 연구원은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다양한 기기에 들어가는 패널을 모두 가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엣지 그라인더는 미래컴퍼니가 성장할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다. 미래컴퍼니는 지난 1984년 미래엔지니어링이라는 회사로 시작했다. 처음에는 반도체 생산 라인에서 물건을 분류하는 로봇 팔 등의 제품을 만들었다. 1990년부터 디스플레이 쪽으로 사업을 확장하기로 하면서 엣지 그라인더 개발에 착수했다. 당시 엣지 그라인더는 일본 기업이 독점하고 있는 장비였다. 1990년 말부터 일본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디스플레이 장비 국산화가 이슈가 됐다. 이런 흐름에서 2000년 미래컴퍼니는 국내 최초로 엣지 그라인더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미래컴퍼니에서는 엣지 그라인더와 홀 드릴링 장비 이외에도 다양한 장비가 탄생했다. IT 기기의 폼팩터가 곡선으로 변하는 등 다양한 형태를 띠게 되면서, 직각으로만 패널의 모서리를 가공하는 엣지 그라인더도 진화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미래컴퍼니는 패널을 다양한 모양으로 가공할 수 있는 ‘이형 그라인더’를 2011년에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지난 2019년에는 휘어지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이 스마트폰에 적용됨에 따라 레이저 가공 장비도 개발했다. 기존 엣지 그라인더로 휘어지는 OLED 패널을 가공하면 찢어질 수 있는 만큼, 레이저로 패널을 가공하는 장비를 만든 것이다.

새로운 기술이 적용된 장비를 연이어 개발하며 회사도 성장 가도를 이어갔다. 지난 수년간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중국 BOE를 비롯한 대형 디스플레이 기업이 미래컴퍼니의 연구동을 직접 방문하거나 장비에서 나온 결과물을 받아보고 수주를 결정했다. 굵직한 기업의 수주를 따내며 글로벌 엣지 그라인더 점유율 1위 기업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순탄한 지금 상황과 달리 개발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김준구 미래컴퍼니 대표는 “반도체 관련 업체였던 만큼 디스플레이 가공 장비를 생산하기 쉽지 않았다”며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었고 주변에선 회사 재정이 악화할 수 있다면서 개발을 중단하라고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고객을 설득해 외부로 가지고 나오기 어려운 디스플레이 패널 샘플을 받아 장비 테스트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 패널이 깨지면 조각을 이어 붙여 온전히 하나로 만들어 돌려주는 고단한 과정을 반복했다.

지난 7일 오전 김준구 미래컴퍼니 대표가 경기 화성시 미래컴퍼니 본사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민국 기자

기기의 세밀함과 신속함을 모두 챙기는 것도 버거운 과정이었다. 김 대표는 “패널을 너무 많이 깎으면 수율(생산품 중 정상품 비율) 문제가 생기고 덜 깎으면 크랙(금)을 완전히 제거하기 어렵다”라며 “가공 시간도 너무 오래 걸리게 되면 전공정에서 쏟아져 나오는 패널 물량을 감당하기 어려워진다”라고 말했다. 그는 “다른 업체의 경우 정확도를 챙기고 가공 속도를 포기하기도 한다”며 “그럼에도 우리는 완전한 장비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밝혔다. 지속적인 노력 끝에 2년 6개월 만에 엣지 그라인더 개발에 성공했고, 이 경험은 다른 사업을 확장하는 데도 큰 원동력이 돼 줬다. 미래컴퍼니는 현재 배를 가르지 않고 수술하는 로봇인 ‘레보아이’와 자율주행차나 로봇의 눈이 되는 3차원(3D) 카메라 ‘큐브아이’를 개발해 공급하고 있다.

올해 디스플레이·반도체 업황이 좋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김 대표는 이를 또 다른 기회로 삼겠다고 설명했다. 그는 “호황기에는 생산량을 늘리고 불황기에는 연구·개발(R&D)에 투자해 신기술과 장비를 미리 준비하면 된다”며 “끊임없이 노력하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줘 신뢰 관계를 유지하고 회사 규모도 키워나갈 계획이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