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공급 부족에 시달리는 반도체용 기판인 플립칩 볼그리드 어레이(FC-BGA)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LG이노텍(011070)과 삼성전기(009150)의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두 업체는 최근 수년 동안 FC-BGA 기판 관련 설비 투자를 크게 늘리며 대량 양산 체제를 갖춰나가고 있다. 높은 사양의 반도체가 제 기능을 하게 보조하는 첨단 기판 수요가 점점 늘면서 관련 업체들의 시장 점유율 경쟁도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1일 업계에 따르면 LG이노텍은 지난달 13일 경상북도 구미4공장에 FC-BGA 기판 양산 설비 반입식을 진행했다. 이 공장은 지난해 6월 인수한 22만㎡ 규모의 공장으로, 최신 FC-BGA 기판 생산라인이 들어서고 있다. LG이노텍은 올해 상반기까지 구미4공장의 양산 체제를 갖추고 하반기 생산에 돌입할 예정이다.
LG이노텍은 지난해부터 FC-BGA 관련 사업에 약 4130억원을 투자해왔다. 이미 구미2공장에서도 FC-BGA 기판을 만들고 있다. 이 공장에서는 지난해 2월 시장 진출을 선언한 뒤 4개월 만에 네트워크·모뎀용·디지털TV용 FC-BGA 기판 첫 양산에 성공했다. 일반적으로 시장 진출부터 양산까지 2~3년이 걸리는 점을 고려할 때 양산 시점을 크게 앞당겼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LG이노텍이 공급 부족 상태인 FC-BGA 기판을 빠르게 양산하는 데 성공한 건 여러 기판을 공정해 본 경험 덕분이다. LG이노텍은 무선주파수 패키지 시스템(RF-SiP)용 기판과 5G 밀리미터파 안테나 패키지(AiP)용 기판 세계 점유율 1위인데, 이 제품들의 제조 공정은 FC-BGA 기판과 비슷하다. LG이노텍 측은 “그동안 집중해 온 기판 제조 공정과 비슷해 FC-BGA 기판 생산에 빨리 돌입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신규 생산을 늘리며 투자를 확대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국내 경쟁사인 삼성전기도 FC-BGA 기판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이다. 삼성전기는 지난 2021년부터 1조9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통해 베트남, 부산, 세종 등에 생산 공장을 마련한 뒤 FC-BGA 기판에 대한 양산 능력을 키우고 있다. 삼성전기가 생산능력 증설을 마치면 서버·네트워크·전장 등 다양한 분야에 쓰이는 FC-BGA 기판을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기는 지난해 11월엔 국내 기업 중 처음으로 고부가인 서버용 FC-BGA 기판 생산을 시작했다. 서버용 FC-BGA 기판은 중앙처리장치(CPU)와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비롯한 고성능의 반도체 칩과 메인 보드를 연결하는 데 쓰이는 만큼 높은 수준의 기술력이 필요한 제품이다. 삼성전기의 서버용 FC-BGA는 명함 크기의 기판에 머리카락 굵기보다 얇은 6만개의 단자를 구현하면서도 EPS(수동부품 내장 기술)를 통해 기존 제품 대비 전력을 50% 절감할 수 있는 기술이 적용됐다.
두 업체가 FC-BGA 기판 사업에 집중하는 이유는 높은 수익성 때문으로 보인다. 높은 성능의 CPU 제품은 기판에 더 많은 전기 신호 채널을 필요로 하는데, FC-BGA 기판은 이 칩들을 메인 기판에 밀착시켜 신호 손실을 줄이고 데이터 처리 속도까지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자율주행, AI를 비롯한 신산업 성장과 함께 반도체가 처리해야 하는 데이터의 용량이 커지면서 이를 감당 할 수 있는 기판에 대한 수요도 자연스레 늘고 있다. 글로벌 경기 불황에 따라 전자제품의 부품 수요가 줄어든 상황에서, LG이노텍과 삼성전기가 새로운 먹거리로 FC-BGA 기판 시장을 보고 있는 것이다.
업계도 FC-BGA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할 것이라 보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후지키메라 종합연구소는 글로벌 FC-BGA 기판 시장 규모가 지난해 80억달러(약 9조8800억원)에서 연평균 9%씩 성장해 오는 2030년엔 164억달러(약 20조2540억원)까지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기술 발전에 따라 반도체가 처리해야 하는 데이터의 용량이 크게 늘고 있다”며 “이에 따라 많은 양의 데이터를 잘 처리하도록 돕는 FC-BGA 기판 수요도 따라서 늘고 있어 시장도 지속해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