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005930)가 올해 반도체 설비투자(CAPEX)를 전년 320억달러(약 39조원) 수준에서 올해는 260억달러(약 32조원) 수준으로 낮출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특히 지난해 4분기 예정된 투자 일부를 올해로 미룬 삼성의 4분기 투자 규모도 예상을 크게 밑돈 것으로 분석된다.
31일 조선비즈가 입수한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의 자료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해 설비투자 규모를 전년보다 19% 줄인 32조원 수준으로 집행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미 지난해 4분기 예정된 설비투자 일부를 올해로 미뤘으며, 올해 역시 시장 상황 악화에 따른 적자규모 확대 우려에 따라 투자 시기를 조절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설비투자 규모는 2021년 381억달러(약 47조원)에서 2년 연속으로 축소되는 추세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메모리반도체 업황 부진으로 이미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은 감산과 투자 축소를 발표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지난해 3분기 컨퍼런스콜에서 “인위적인 감산은 없다”는 공식 견해를 밝힌 이후 최근까지도 이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입장에) 변화는 없다”고 말했다.
다만 공정 전환, 생산라인 재배치에 따른 자연적인 생산량 손실은 있을 수 있다. 또 일부 설비투자가 지난해 4분기부터 미뤄지면서 자연스럽게 신규 생산능력 증설이 미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부터는 D램, 낸드플래시 투입량도 일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의 생산능력 감산 여부가 주목받는 이유는 반도체는 업다운(Updown)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사이클 산업이기 때문이다. 통상 반도체 기업들은 수요가 부진하면 공급량을 조절하는 식으로 대응했다.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점유율 1위인 삼성전자가 공급량 조절에 나설 경우 전 세계 수요공급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현재 세계 반도체 기업들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재고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메모리 수요의 중요 지표인 재고가 3배 이상 증가해 역대 최대인 3∼4개월 치 공급량 수준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메모리 기업은 이미 반도체를 생산할 때마다 손실이 발생하고 있어 올해 3사 합계 영업손실이 역대 최대인 50억달러(약 6조1000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추산도 나온다.
특히 지금까지 반도체 단기 시황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던 삼성전자가 이번 실적발표 때 앞으로 생산량과 관련해 어떤 계획을 내놓을지에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통상 경기침체에도 투자를 지속해 회복세로 전환됐을 때 시장을 선점해왔으나, 이번에는 공급을 축소할 것이 불가피한 것으로 가트너는 관측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3분기 삼성전자가 인위적인 감산에 선을 그으며 정상적인 투자 활동을 하겠다고 밝힌 시장 상황과 현재는 명백히 다르다”라며 “현재 삼성전자의 D램 재고치와 손실 규모를 보면 애초 삼성의 전망보다 수요가 부진했고, 특히 서버용 D램 분야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출하량을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외적으로 감산을 선언하진 않더라도 공급량 조절은 피할 수 없는 수순이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