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올해 출시할 예정이었던 AR(증강현실) 글래스의 출시 시기가 무기한 연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기술적인 문제 때문에 안경 형태의 제품을 포기하고, 우선 헤드셋부터 출시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헤드셋도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안경 형태의 제품보다 무거운 것은 물론이고 가격대가 3000달러(370만원)에 육박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애플이 AR·VR(가상현실) 시장에 본격 뛰어들면 해당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애플이 이런 행보를 보이면서 올해 AR·VR 시장 전망도 어두워졌다. 경기 침체까지 겹쳐 소비자들은 AR·VR 기기에 지갑을 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20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애플은 AR 글래스와 관련, 칩과 배터리 등 부품을 확보하는 것과 경량화 기술을 개발하는데 있어 한계에 부딪혀 AR 글래스 출시를 무기한 연기했다. 애플은 ‘리얼리티’라는 이름으로 AR 및 VR기기 라인업을 준비하고 있는데, 올해 하반기에 AR 글래스를 선보일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를 포기하고 우선 헤드셋 출시에 힘을 쏟는다는 것이다.
AR 글래스는 안경 형태의 기기 특성상 하루 종일 착용할 수 있을 정도로 가벼워야 한다. 따라서 기술적인 측면에서 무게, 부피 및 미적 요구사항이 VR 헤드셋보다 훨씬 엄격하고 까다롭다. 그만큼 생산비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별도로 휴대할 수 있는 배터리도 필요하다. 이런 문제뿐 아니라 프로세서, 소프트웨어, 제조와 관련한 문제까지 해결되지 않으면서 애플은 결국 AR 글래스 개발을 당분간 중단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헤드셋은 올해 상반기에 출시될 전망이다. 올해 출시되는 헤드셋은 MR(혼합현실) 기기로 AR·VR 기기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기술이다. 예컨대 AR은 현실 세계의 배경에 가상 이미지를 추가해 보여주는 것으로 ‘포켓몬 고’ 게임이 여기 해당된다. AR 글래스를 쓰고 주변 환경을 보면 안경 렌즈처럼 생긴 스크린에 다양한 디지털 정보가 떠오르는 식이다. VR은 현실과 단절된 가상의 환경을 만들어 사용자가 가상 환경 내에서 다른 사용자 또는 컴퓨터와 상호 작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MR은 AR과 VR이 혼합된 개념으로 현실과 가상의 정보를 결합해 새로운 가상 공간을 만들어 내는 기술이다.
MR 헤드셋은 이르면 오는 6월 열리는 애플 세계 개발자 컨퍼런스(WWDC23)에서 전용 소프트웨어인 ‘xrOS’ 등과 함께 공개되고 하반기에 공식 출시될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MR 헤드셋은 고급 고해상도 디스플레이, 10개 이상 카메라, M2프로세서 및 AR·VR 전용칩 등이 내장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MR 헤드셋의 가격이다. 업계 전망치는 3000달러(370만원)로, 소비자가 쉽게 구매하기에는 너무 비싸다는 평가다. 시장 조사 기관 CCS 인사이트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AR·VR 헤드셋 출하량은 960만대로 전년 대비 12% 이상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어려운 경제 상황에 지출 예산을 줄이면서, 필수 구매 품목이 아닌 AR·VR 헤드셋 시장이 타격을 입은 것으로 해석된다”며 “앞으로 AR·VR 시장이 장기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은 지속해서 나오고 있지만 실제로 시장이 활성화되려면 우선적으로 기기 가격이 낮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개발자 위주로 고가의 헤드셋을 판매한다고 하더라도, 개발자들 역시 시장 수요가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해당 기기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라며 “결국 관건은 가격이다”라고 말했다.
애플의 보급형 헤드셋은 MR이 아닌 VR을 지원하는 형태로 2024년이 돼야 나올 전망이다. 가격대는 올해 나오는 제품의 절반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가격은 최대 1600달러(200만원)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경쟁사 메타(페이스북 모회사)가 만든 VR 헤드셋 가격은 1500달러(185만원) 수준이다. 업계에서는 애플의 보급형 기기가 나와야 이 시장이 활성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애플의 시장 진입이 전체 시장 성장에 중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애플의 보급형 기기가 나올 때까지 AR·VR 시장에서는 메타 홀로 고군 분투할 것으로 예상된다.
CCS 인사이트는 “하룻밤 사이에 시장을 변화시킬 수 있는 회사가 있다면 바로 애플이다”라고 했다. 업계 관계자는 “VR 시장은 그동안 메타가 독점해왔다”면서도 “애플이 진출하면 충성스러운 고객층을 토대로 메타 점유율을 빠르게 따라잡을 것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