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빙의 신작 콘텐츠./ 티빙 제공

코로나19 수혜로 급성장한 국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업계가 시장이 포화상태에 접어들면서 위기에 봉착했다.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 기업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따라잡기 위해 공격적인 투자를 집행하다 적자 더미에 빠진 토종 OTT 업계에선 ‘2023년 목표는 생존’이라는 자조의 목소리까지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시장은 정체돼 수익성은 바닥을 쳤고 게다가 글로벌 OTT의 저렴한 광고 요금제와 정부 규제 움직임으로 국내 OTT는 사면초가의 상황이라는 평가다.

18일 OTT 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OTT 업체들 사이에선 ‘내년엔 국내 업체의 생존이 위협받을 수 있다’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을 따라잡을 만한 자체 제작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투입하는 제작비가 가파르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최근 인기를 끌었던 넷플릭스 시리즈 ‘수리남’은 편당 제작비가 55억원에 달할 정도로 콘텐츠 제작 비용은 천정부지로 치솟은 상태다. 티빙이 올해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2000억원을 투입하는 등 국내 OTT 업체도 공격적인 투자 행보를 보이고 있으나 여전히 약 20조원에 달하는 글로벌 OTT 투자금에는 크게 못 미치는 규모다. OTT 경쟁이 날이 갈수록 심화하는 상황에서 내년에도 콘텐츠 수급 비용이 그대로 급증한다면 회사 생존도 어렵다.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OTT 관련 토론회에서 고창남 티빙 국장은 “2021년에는 700억원 적자였고, 올해는 그 규모를 뛰어넘을 것으로 보이며 내년은 더 암담하다”라며 “올해는 ‘성장’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웠다면 내년에는 ‘생존’이란 키워드가 필요하다”라고 했다.

실제 넷플릭스 한국법인이 지난해 매출 6316억원과 영업이익 171억원을 기록한 것과 달리 국내 OTT 업계는 만성적인 적자에 허덕이며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티빙과 웨이브는 각각 매출 1315억원과 2301억원에 적자 762억원과 558억원을 기록했다. 왓챠의 경우 누적 결손금이 지난해 말 기준 2017억원을 넘었고, 자본총계도 325억원 적자로 완전 자본잠식 상태다. 왓챠는 지난 5월 프리IPO(상장 전 지분투자)를 위한 신규 투자 유치까지 실패했으며 결국 LG유플러스와 경영권 매각을 협상하고 있다. KT는 자사 OTT ‘시즌’을 티빙에 매각하기도 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 포스터./ 넷플릭스 제공

적자 행진에도 국내 OTT 업계는 콘텐츠에 천문학적인 투자를 멈출 수 없다. 기존에 시장을 선점했던 넷플릭스뿐 아니라 디즈니플러스, 애플TV플러스까지 포화 상태인 국내 시장에 진출한 가운데 차별화된 자체 제작 콘텐츠를 선보이지 못한다면 가입자를 모두 뺏길 수 있기 때문이다. 내년에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오리지널 대박’만을 기다리며 국내 OTT가 투자를 계속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여기에 글로벌 OTT가 저렴한 ‘반값’ 광고 요금제까지 내놓으면서 토종 OTT는 벼랑 끝에 몰렸다. 넷플릭스는 지난 11월 기존 구독료(월 9500원)의 절반 가격인 월 5500원의 광고 요금제를 한국을 포함한 12개 국가에서 선보였다. 1시간 분량의 영상을 볼 때마다 평균 4~5분가량의 광고를 콘텐츠 재생 시작 전과 중간에 보는 방식이다. 디즈니플러스 역시 지난 8일 월 7.99달러의 광고 요금제를 미국에서 출시했다. 7.99달러였던 기존 무광고 요금제는 월 10.99달러로 가격이 인상됐으며 국내에서도 광고 요금제가 도입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해외 OTT 구독에 대한 가격 장벽이 낮아지고 있는 만큼 국내 OTT 업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태다.

또 정부 규제 역시 국내 OTT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다. 현재 국회에선 저작권법 개정안이 논의되고 있다. 법안에는 영상물 저작자인 연출가나 각본가 등이 지식재산권(IP)을 OTT 등에 양도했을 때에도 수익에 비례한 별도의 보상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이 담겼다. 넷플릭스가 ‘오징어게임’ 등 한국 제작사의 콘텐츠로 막대한 수익을 냈으나 넷플릭스에 IP를 양도한 제작사에 공정하게 수익이 배분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저작자의 수익 보장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법안이 발의된 것이다.

글로벌 OTT를 제재하기 위해 발의된 법안이지만 국내 OTT 업계 역시 이 법안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이면서 업계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미 만성 적자로 사면초가인 상황에서 해당 법안으로 인해 국내 과도한 영상물 제작비용 상승이 촉발되고 국내 OTT 업체가 부담을 느껴 국내 OTT 저작물 제작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흥행 여부가 보장되지 않는 영상 업계 특성상 거금을 투자한 콘텐츠가 흥행하지 못하면 OTT가 손실을 보게 되는데, 추가 보상권까지 확대된다면 콘텐츠 투자 비용이 가파르게 늘어나 국내 영상 업계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는 의견이다.

OTT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OTT가 막대한 콘텐츠 양과 다양한 오리지널로 국내 시장에 공세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리 적자가 누적돼도 국내 OTT는 투자를 멈출 수 없다”라며 “여기 그마저 가격경쟁력도 사라지고 정부 규제까지 더해진다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업계에 초래될 것이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