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24회 반도체대전(SEDEX 2022)에서 한 참관객이 반도체 웨이퍼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반도체 분야의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 중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의 기술력과 연구개발(R&D)이 필요한 반도체 계측장비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이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대형 반도체 기업과의 R&D 협력을 바탕으로 미국, 일본 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반도체 장비 국산화에 시동을 걸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29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파크시스템스 등 국내 반도체 계측장비 기업이 삼성전자(005930), SK하이닉스(000660) 등 국내 대표 반도체 기업의 극자외선(EUV) 노광공정을 비롯해 최첨단 후공정(패키징) 등에서 비중을 높여나가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는 EUV 공정 장비와 짝을 이룰 국산 계측장비의 검증을 조만간 완료할 예정이며, 첨단 후공정(패키징) 등에도 국산 장비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방침을 정했다.

오로스테크놀로지의 웨이퍼 검사 프로그램. /오로스테크놀로지 제공

최첨단 공정에서 반도체 설계, 공정상의 오류를 미리 잡아내는 반도체 계측기술은 반도체 미세 공정이 10㎚(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이하로 진화하면서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는 추세다. 이 기술은 첨단 반도체의 개발과 생산성 향상과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만큼 삼성전자, 인텔, TSMC, SK하이닉스 등 주요 기업이 적극적인 투자를 단행하고 있기도 하다.

반도체 계측검사는 일반적으로 극미세 공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잡아내는 작업을 말한다. 웨이퍼(wafer, 집적 회로 제작에 쓰이는 실리콘 결정 소재의 얇은 판) 하나를 전부 점검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통상 10분~20분 정도다. 그 시간 동안 찾아내야 하는 결함(defect)의 크기는 1㎚ 이하 수준으로 내려가기도 한다. 1㎚는 1m의 10억분의 1이고 웨이퍼 한 장의 지름이 300㎜이기 때문에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결함 크기의 몇백만 배에 이르는 범위를 꼼꼼히 훑어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현재 반도체 계측기술은 서울에서 대전까지의 거리인 150㎞를 10분 안에 초고속으로 주파하는 동안 도로에 떨어진 100원짜리 동전 하나를 발견해야 하는 정도의 높은 정확도를 요구하는 최첨단의 기술이다”라며 “불과 2010년대 중반까지는 미국 KLA가 시장을 독식하면서 한국 기업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지만 수년 사이에 삼성, SK하이닉스의 적극적인 투자와 전문인력 간의 협력을 통해 기술적 성장이 빠르게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특히 원자현미경(AFM) 기술로 국내 반도체 계측장비 부문을 이끌고 있는 파크시스템스는 삼성전자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와 10㎚ 초반대로 달려가고 있는 D램 미세공정과 보조를 맞춰 장비 공급을 늘려나가고 있다. 원자현미경은 1㎚의 미세한 물질까지 관찰할 수 있는 장비다. 이 기업은 반도체 장비 시장의 전반적인 불황 속에서도 올해 실적 추정치가 전년 동기 대비 34% 성장한 1143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영업이익 추정치도 전년 동기 대비 77.9% 늘어난 313억원이다.

SK하이닉스와 오랜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오로스테크놀로지의 계측 장비는 삼성전자의 첨단 공정에 적용될 것으로 관측된다. 업계에 따르면 조만간 삼성전자는 오로스테크놀로지의 반도체 계측 장비를 검증해 도입을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이 기업은 중국의 반도체 기업으로도 계측장비 수출을 진행하며 한국뿐 아니라 해외 고객사로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고 있다.

파크시스템스 연구원이 원자현미경(AFM)으로 반도체 웨이퍼의 결함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파크시스템스 유튜브 캡처

해당 기업들의 특징은 특히 국내 반도체 산업 대표주자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의 협업 수준이 높다는 것이다. 특히 오로스테크놀로지의 경우 2011년부터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의 책임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세계 최초 EUV 노광장비 기반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양산 프로젝트 총괄 리더를 역임한 연구원이 현재 임원으로 삼성과의 협업을 주도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이 중국에 대한 강력한 반도체 제재를 실행하면서 미국의 대표적인 반도체 계측회사인 KLA의 중국 수출이 막힌 가운데 아직 제재의 대상이 되지 않은 두 기업의 대중국 매출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증권가를 중심으로 나온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중국 제재 방향을 봐야겠지만 통상 계측 장비의 경우 실제 미세공정의 발전을 직접 끌어올리기보다는 이미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른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이기 때문에 대중국 제재에 해당되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