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QD-OLED TV.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005930)LG전자(066570)가 올해 출시한 TV 중 절반 이상이 에너지 소비 효율 등급에서 4~5등급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여부가 주요 투자 지표로 떠오르는 등 전자업계의 친환경 행보도 빨라지고 있지만, 가전의 대표격인 TV업계의 경우 시대를 역행하는 모양새다. 제조사들은 고화질, 고성능 TV를 위해 낮은 에너지효율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면서도 저전력 반도체 등을 도입해 효율을 더 높여 보겠다는 계획이다.

◇ 올해 출시 TV 절반이 전기 먹는 ‘4~5등급’

12일 한국에너지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올해 출시된 삼성전자의 TV 총 65개 중 에너지 소비 효율 1등급을 받은 제품은 19개로 전체 대비 29.2%에 불과했다. 반면 4등급은 33개로 50.8%, 5등급은 3개로 4.6% 수준이었다. 사실상 출시한 TV 10대 중 5대는 에너지 효율 4~5등급이라는 것이다.

에너지소비 효율은 1등급에 가까울수록 에너지 절약형이며, 5등급 대비 약 30~40%의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다. 최저등급에 미치지 못할 경우, 제품의 판매가 금지될 수도 있다.

LG전자도 상대적으로 낮은 에너지 효율의 TV 비중이 절반을 넘었다. 4등급을 받은 TV는 18개, 5등급을 받은 TV는 2개로 전체 대비 각각 48.6%, 5.4%의 비중을 보였다.

TV의 낮은 에너지 효율은 대형화와 고화질화와 관련이 있다. TV 화면이 커지면 빛을 내야 하는 면적도 늘어나고 높은 화질을 위해 밝기도 올려야 하다 보니 소비 전력도 커질 수 밖에 없다.

LG전자는 지난달부터 97형 수준의 초대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OLED 패널은 현재 TV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액정표시장치(LCD) 패널보다는 전력 효율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고성능인 만큼 자체 전력 소모가 커 올해 출시된 LG전자의 OLED TV 18개 모두가 에너지 효율 4등급 이하에 머물러 있는 상태다.

삼성전자도 지난 8월부터 4K(3840×2160 해상도) 화질을 갖춘 퀀텀닷 디스플레이(QLED) TV를 판매하기 시작하는 등 고성능 제품을 시장에 내놓고 있다. 현재 두 업체가 가전의 프리미엄 라인 강화를 전략으로 둔 만큼 더 많은 고성능 TV가 시장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LG전자가 출시한 97형 OLED TV. /LG전자 제공

LG전자 관계자는 “TV의 경우는 얼마나 좋은 화질을 구현하느냐가 중요한 제품인데, 소비자의 수요를 맞추려면 제품의 성능을 높여야 하고 자연스레 전력 소모가 커져 에너지 효율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삼성전자도 “TV의 소비전력량이 감소한다는 건 성능도 비교적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따라서 고성능 TV일수록 에너지 효율 등급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 저전력 반도체·AI로 전기 다이어트... 등급 기준 상향도 영향

이러한 상황은 TV업계 친환경 전략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올해 발표한 신환경경영전략을 통해 제품의 전력 소비량을 대폭 절감하겠다고 밝혔다. 스마트폰, TV, 냉장고, 세탁기 등 주요 전자 제품에 저전력 기술을 적용한다는 것이다. 2030년까지 전력 소비량을 2019년 동일 성능 모델 대비 평균 30% 줄인다는 게 주요 계획이다.

LG전자도 2030년까지 TV를 포함한 주요 가전제품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을 2020년 대비 20% 이상 줄이겠다는 친환경 경영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TV업계는 저전력 반도체 등 에너지 고효율 부품을 사용하고 인공지능(AI) 절약 모드를 제품에 도입해 에너지 소비 효율을 높이겠다는 목표다.

일각에서는 에너지 소비 효율 등급을 매기는 기준이 상향 조정된 것도 이 같은 흐름에 일조했다는 평가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020년 말 발표한 효율관리기자재 운용 규정 개정안을 통해 TV의 에너지 효율 등급의 기준이 되는 소비전력 값을 실제 사용자 환경에 맞게 개선했다. 기존엔 실험실에서 측정한 수치를 토대로 TV의 소비전력 값을 산출했는데 개정안에서는 이 값에 1.3을 곱해 적용하는 식이다.

LG전자의 경우,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올해 1등급을 받은 TV의 비율이 전체 대비 13%포인트(P), 삼성전자는 47%포인트(P) 가량 줄었다. 기술 개발로 1등급을 받은 제품이 너무 많아지면 기준은 또다시 조정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의견이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효율이 낮은 가전이 계속 시장에 나오다 보면 기업도 친환경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며 “결국 국가나 국내 산업계가 나아가야 할 탄소 중립 시대에서 뒤처질 수 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