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안은 분주했지만, 고요했다. 가끔 ‘우웅우웅’하는 기계음만 들릴 뿐이었다. 흰색, 주황색, 파란색 등의 방진복을 입은 수십명의 직원은 무엇이 만들어지는지조차 알 수 없는 커다란 기계 사이를 오가며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공장 천장에 매달린 박스들이 이 기계, 저 기계에 무언가를 열심히 실어 나르고, 공장 안 TV 화면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여러 숫자가 어지럽게 표현돼 있었다. 이곳은 전 세계 메모리반도체 1위 삼성전자가 D램과 낸드플래시를 생산하는 경기 평택캠퍼스 1생산라인(P1)이다.

7일 오전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찾았다. 몬드리안 패턴을 적용한 건물이 인상적이다. 평택캠퍼스는 전 세계 메모리(D램, 낸드플래시)의 약 15%를 공급할 정도로 큰 규모가 특징이다. 기자가 둘러본 P1의 건물은 길이 520m, 폭 200m로 잠실 롯데타워를 옆으로 눕힌 크기와 맞먹는다. 이날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투어는 지난 5월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이곳을 찾았을 때와 거의 동일한 구성으로 이뤄졌다.

평택캠퍼스의 직원 숫자는 6000명에 달한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견학용 유리창을 통해 본 생산라인 내부에는 직원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자동차와 같은 큰 기계 생산과 달리 머리카락 수백배에서 수만배에 이르는 미세한 회로 작업이 이뤄지는 반도체의 경우 생산이 모두 전자동으로 이뤄지고 있어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사람 직원이 하는 일은 기계가 잘 움직이고 있는지, 혹은 기계에 어떤 문제가 생기지 않는 관리 차원이다”라고 했다. 천장에 달려 있던 박스는 바로 로봇 직원이었다. 반도체 장비에 웨이퍼(반도체 원판)를 옮겨준다. 1500대가 라인 안을 바삐 다닌다. 1분당 300m를 움직일 수 있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내부 모습. /삼성전자 제공

공장 바닥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구멍이 수백개 뚫려 있다. 먼지를 빨아들이는 구멍이다. 반도체 생산에 있어 먼지는 최대의 적. 사람 직원이 형형색색의 방진복을 입고 업무를 보는 이유도 그러하다. 구멍을 통해 공장 내 모든 먼지를 밖으로 배출한다. 삼성전자는 공장 내 먼지 수준을 ‘클래스1′로 맞춘다. 30㎤(입방센티미터) 공간에 0.5㎛(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 먼지 1개가 있다는 뜻이다. 일반 공장에서 같은 부피의 공간에 먼지 100만개, 중환자실에 100개가 있는 것과 비교하면 ‘먼지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동 중인 평택캠퍼스 생산라인은 모두 3개다. P1(평택1)이라고 불리는 1생산라인은 77만6000㎡의 크기다. P2(2생산라인)와 P3(3생산라인)는 각각 82만9000㎡, 99만1700㎡으로 라인 숫자가 커질 수록 규모도 커진다. 최근 기초공사를 시작한 P4를 포함, 앞으로 지어질 P5, P6 등을 종합하면 평택캠퍼스 공장의 전체 면적은 298만㎡에 달한다. 축구장을 무려 400개 모아둔 양이다.

P1에서는 첨단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한다. D램과 낸드플래시를 12인치(300㎜) 웨이퍼 기준 각각 월 10만장, 19만장 생산한다고 알려졌다. 극자외선(EUV) 공정은 없다. D램의 경우 3세대(1z) 제품을, 낸드는 128단 5~6세대가 주력이다. P2는 ‘하이브리드’다. EUV 공정 D램과 첨단 7세대 낸드플래시, 5㎚(나노미터·10억분의 1m)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를 맡고 있는 명실상부 삼성의 최첨단 공장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20일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둘러보며 대화하고 있는 모습. /뉴스1

P3는 지난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방문해 일약 세계적인 명소가 된 곳이다. P2와 같은 ‘하이브리드’ 구조를 택하고 있다. 세계 최선단 공정인 3㎚ 파운드리 반도체가 이곳에서 만들어진다. P3를 짓는 데만 에펠탑 29개를 만들 수 있는 양의 철근이 사용됐다고 한다. 경계현 삼성전자 DS(디바이스솔루션)부문 대표이사 사장은 이날 평택캠퍼스를 방문한 기자단에 “3㎚ 첫 제품을 만들고 있고 2세대를 하고 있는데, 고객들 관심이 높다”라며 “5㎚, 4㎚는 개발과 성능 향상 일정이 1위 기업에 비해 약간 뒤졌지만, 3㎚는 먼저 또 적극적으로 해서 내년 말쯤에는 지금과 달라진 모습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삼성전자는 8년 뒤인 2030년 전 세계 시스템반도체 1위를 목표로 하고 있다. P3는 그 목표 달성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핵심 생산기지라고 할 수 있다. 경 사장은 “어떻게 1등을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예를 들면 선단노드(미세공정)를 이기겠다 하는 방법이 있고, 경쟁사의 주요 고객을 삼성 파운드리로 데려오는 방법이 있다”라며 “근간에는 기술을 제대로 만들고, 고객이 원하는 생산능력(capa)를 제공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 전체 매출 1위가 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1위를 해야 한다는 의미로, 여러 가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몇년간 있었던 미국과 중국의 여러 갈등은 삼성전자와 같은 대중 사업 비중이 높은 기업에는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으로 수출되는 반도체 장비에 미국 기술이 포함돼 있을 경우 이를 막겠다는 법을 도입하기도 했다. 경 사장은 “미중 갈등으로 사업에 어려움이 없지 않다”라며 “장기적으로 중국 공장에 새 설비를 투입할 때 어려울 수 있다”라고 했다. 삼성전자는 현재 중국 시안 등에서 공장을 운영 중이다. 경 사장은 “중국이 전체 정보기술(IT) 시장에서의 비중이 40%를 넘는다”라며 “그런 시장을 놓치기 어렵고 중요 고객도 많다. 결국 미중 갈등에 편승하는 게 아니라 이런 갈등 속에서 서로가 윈-윈할 수 있는 솔루션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