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양대 플랫폼 산맥, 네이버와 카카오가 스타트업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만 합쳐서 39곳에 투자했다. 양사가 그동안 투자한 스타트업만 300여곳에 달한다. 네이버가 기존 사업과 시너지에 방점을 투고 커머스와 콘텐츠 분야를 중심으로 투자하고 있다면, 카카오는 스타트업 자체의 성장성에 주목하며 디지털 헬스케어 관련 기업을 선택하고 있다.

◇ ‘커머스·콘텐츠 중심’ 네이버

네이버는 올해 투자 전문조직 D2SF를 통해 총 19곳의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온더룩(패션 콘텐츠), 유니드컴즈(이커머스 운영 자동화), 마이프렌차이즈(온라인 창업) 등 대부분 커머스 기업이었다.

커머스 분야를 필두로 사업을 다각화하겠다는 네이버의 의지가 스타트업 투자에서도 드러났다. 네이버는 지난 1분기 실적발표에서 커머스 사업의 성장을 강조하며, 해당 사업의 이익을 기존 검색 사업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네이버의 1분기 커머스 사업 매출은 4161억원이었다. 쇼핑 검색, 쇼핑 디스플레이 광고, 쇼핑 수수료, 멤버십 매출을 합친 커머스 거래액은 같은 기간 9조원을 기록했다. 김남선 네이버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당시 콘퍼런스콜에서 “마케팅 비용을 빼기 전 단계의 커머스 사업 이익률은 검색 사업보다 무려 1.5배 높았다”며 “이는 중장기적으로 커머스 사업에서 더 많은 이익 창출을 기대할 수 있다는 뜻이다”라고 했었다.

콘텐츠 분야로의 투자 역시 두드러졌다. 새 먹거리인 메타버스 사업을 확대하기 위해서로 풀이된다. D2SF가 지난 4월에 투자한 리빌더AI가 대표적이다. 리빌더AI는 스마트폰 카메라로 물체나 공간을 찍기만 하면 3분 이내에 3D 모델로 변환시켜주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양상환 네이버 D2SF 리더는 “그동안 3D 모델링은 전문가의 영역이었지만, 메타버스의 부상과 함께 누구나 간편하게 활용할 수 있는 3D 저작도구가 중요해졌다”며 “리빌더AI는 창업 초기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3D 모델링과 후처리 기술력을 보유한 팀으로, 향후 메타버스 콘텐츠 생태계를 풍성하게 만드는 기업으로 성장할 잠재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카카오벤처스가 투자한 스타트업들. /카카오벤처스 홈페이지 캡처

◇ 카카오, 디지털 헬스케어 ‘눈길’

네이버가 자사 기존 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스타트업을 찾는다면, 카카오는 스타트업 자체의 성장성에 주목한다. 실제로 카카오의 스타트업 양성조직인 카카오벤처스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명감을 가진 창업가가 세상을 바꾼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설립됐다.

카카오벤처스가 조성해 지난해 처음으로 청산한 ‘케이큐브1호 벤처투자조합펀드’의 목록에는 두나무도 있다. 115억원으로 조성한 해당 펀드는 두나무의 기업 가치가 20조원까지 불어나면서 100배 이상의 수익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두나무는 국내 1위 가상자산거래소 ‘업비트’의 운영사다.

카카오벤처스가 올해 들어 투자한 20곳의 스타트업 중에서는 프리베노틱스(AI 암 진단), 프로이드(정밀 의료 영상기기), 위커버(AI 의료), 아티피셜소사이어티(독해력 향상), 메딜리티(의약품 분류) 등 5곳이 눈에 띈다. 모두 디지털 헬스케어와 관련된 기업이다.

카카오는 지난해 사내 독립기업 카카오헬스케어를 출범하며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에 뛰어들었다. 분당서울대병원에서 헬스케어 사업을 추진하던 황희 소아청소년과 교수를 대표로, 맥킨지 컨설턴트 출신이자 서울와이즈재활요양병원을 운영하는 김치원 원장을 파트너로 각각 영입했다. 카카오는 스타트업 투자와 별개로 카카오헬스케어에 12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단행하며 자금을 몰아주기도 했다.

◇ 양사 중복 투자도 늘어

네이버와 카카오가 D2SF와 카카오벤처스를 통해 지금까지 투자한 스타트업은 총 300여곳에 이른다. 양사가 함께 투자한 스타트업도 늘어나는 추세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지난해 물류창고용 로봇을 개발하는 플로틱에 시드 투자를 한 데 이어 지난달 AI 기반의 에듀테크 스타트업 아티피셜소사이어티에도 나란히 투자했다. 양사는 이 밖에 경도인지장애 디지털 치료제를 개발 중인 이모코그에도 동시 투자했다.

업계는 네이버와 카카오가 앞으로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 스타트업에 더 투자할 것으로 예상한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 2020년 발표한 ‘디지털 헬스케어 활성화를 위한 산업통상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 규모는 2019년 1063억달러(약 125조원)에서 2026년 6394억달러(약 750조원)로 급성장할 전망이기 때문이다. 네이버 D2SF와 카카오벤처스는 이제까지 각각 18곳, 12곳의 관련 스타트업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사는 투자한 모든 스타트업을 공개하지 않고 있어, 이 분야 스타트업이 더 있을 수 있다.

(왼쪽부터) 나군호 네이버 헬스케어연구소 소장, 황희 카카오헬스케어 대표이사. /각 사 제공

네이버는 지난해 로봇수술 전문가 나군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교수도 헬스케어연구소 소장으로 영입했다. 네이버 헬스케어연구소는 현재 사내 AI 플랫폼인 클로바와 함께 문진·예진, 근골격 질환 코칭 등을 개발 중이다. 카카오는 또 다른 투자 전문 계열사인 카카오인베스트먼트를 통해 의료법인과 협업을 모색 중이다. 최근엔 연세의료원과 합작해 세운 의료 빅데이터 플랫폼 파이디지털헬스케어의 지배력을 확보했다.

한 국내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경제 규제혁신 태스크포스(TF)’를 설립하면서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을 활성화하겠다고 밝혔으니 플랫폼 대기업들도 전보다 적극적인 투자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