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일 카카오모빌리티 최고기술책임자(CTO)가 지난 10일 서울 강남 코엑스에서 열린 카카오모빌리티 첫 테크 콘퍼런스 '넥스트모빌리티(NEMO) 2022'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유 CTO 뒤로 디지털트윈 기술로 제작한 고정밀지도(HD맵)가 화면에 소개되고 있다. /카카오모빌리티 제공
카카오모빌리티의 자율주행 로봇 '아르고스'가 만든 서울 강남 코엑스 실내공간의 고정밀지도. /김윤수 기자

카카오의 자회사 카카오모빌리티는 지난 10일 첫 테크 콘퍼런스 ‘넥스트모빌리티(NEMO) 2022′를 열고 “올해를 디지털트윈 제작의 원년으로 삼겠다”라고 선언했다. 앞서 지난해 12월 네이버 자회사 네이버랩스는 ‘아크버스’란 이름의 자사 디지털트윈 기술을 소개하고 상용화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디지털트윈은 자율주행 서비스 구현에 필요한 기술로, 양사는 서로 이 기술을 먼저 완성해 자율주행 생태계를 주도하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디지털트윈은 현실의 사물과 공간을 똑같이 복제한 디지털 가상세계다. 독립된 가상세계인 메타버스와 달리 센서, 이동통신 등 기술을 결합해 현실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반영한다. 건물이나 공장 설비를 디지털트윈으로 만든다면 건물을 관리하거나 공정 설계 변경에 따른 생산효율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다양한 활용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되지만, 모빌리티 업계는 특히 ‘고정밀지도(HD)’를 제작하는 데 필요한 기술로 주목하고 있다.

네이버랩스가 만든 서울 강남 일대의 고정밀지도. /네이버랩스 제공
카카오모빌리티가 최근 인수한 스타트업 스트리스가 만든 고정밀지도. /유튜브 캡처

고정밀지도는 ‘자율주행 인공지능(AI)을 위한 내비게이션’으로 비유할 수 있다. 사람이 직접 운전할 때 눈과 귀로 주변을 살피고 두뇌로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있지만 운전 효율을 높이기 위해 내비게이션을 사용한다. 마찬가지로 자율주행차도 라이다(LiDAR)·레이더·카메라 등 감각기관으로 주변을 인식하고 AI는 그에 맞는 판단을 내릴 수 있지만, 내비게이션이 있다면 자율주행 성능과 안전성을 높일 수 있다.

이런 내비게이션을 가진 기업은 장차 자율주행 AI를 개발하고 성능 경쟁을 벌일 여러 기업에 공급함으로써 자율주행 생태계를 주도할 걸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고정밀지도 없이 자율주행차에 탑재된 소프트웨어(AI)와 센서만으로도 운전할 수 있겠지만, 주변 환경 인식을 탑재 센서에만 의존해야 하므로 어마어마한 컴퓨팅 자원이 소모될 수밖에 없다”라며 “운전자에게 내비게이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하면 자율주행차에 고정밀지도가 얼마나 중요할지도 가늠해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일반적인 내비게이션은 목적지, 이동경로, 교통량, 차선과 방향 안내를 2차원(2D) 지도로 표시해준다. 다른 차와 사람을 하나하나 구분하고 움직임을 추적하고 주변 건물과 지형지물을 세밀하게 알 필요는 없다. 반면 고정밀지도는 자율주행차가 다른 차, 사람, 건물과의 충돌을 피하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 즉 주변 물체의 위치, 크기, 형태, 움직임, 도로의 차선 위치, 신호등과 교통표지판 등을 3차원(3D)으로, ㎝ 단위 정밀도로 보여준다.

네이버랩스가 국내에서 개발 중인 디지털트윈 기술 기반 고정밀 지도. /네이버랩스 제공
카카오모빌리티가 판교에서 시범 운영 중인 자율주행차가 활용하는 고정밀지도. /김윤수 기자

이런 고정밀지도를 만들 수 있는 건 결국 현실의 도로, 건물, 물체를 가상세계에 그대로 복제하고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하는 디지털트윈 기술이다. 센서를 활용해 공간을 이루는 점(点)들을 하나하나 측위(測位·위치 정보 측정)한 후 이를 3차원 점묘화처럼 점들의 집합(점군 데이터)으로 표시하는 게 디지털트윈을 활용한 고정밀지도 제작의 기본이다. 여기에 AI와 빅데이터를 더해 차, 사람, 건물, 차선과 정지선 등을 구분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고정밀지도는 사람이 보기엔 불편하고 실용성이 없지만 AI엔 읽기 편하고 유용한 내비게이션이 된다.

카카오모빌리티는 택시 호출 등 플랫폼을 넘어 자율주행 등 신기술을 선도하겠단 의지를 드러냈다. 경기 판교에서 카카오T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한 자율주행차 호출 서비스도 하고 있다. 디지털트윈 기술 확보를 최우선으로 두는 이유다.

지난 10일 서울 강남 코엑스 '넥스트모빌리티(NEMO) 2022'에서 전시된 고정밀지도 제작용 로봇 '아르고스'. 오른쪽 사진 속에 아르고스가 만든 고정밀지도가 보인다. /카카오모빌리티 제공(왼쪽)·김윤수 기자(오른쪽)

카카오모빌리티는 고정밀지도 제작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 스트리스를 최근 인수했다. 이를 통해 센서를 몸에 달고 이동하며 공간을 측위하는 ‘모바일 매핑 시스템(MMS)’ 장비를 자체 생산하고 있다. 좁은 길, 험한 지형, 대학캠퍼스처럼 차가 다니지 못하는 공간도 소형 로봇과 사람이 대신 측위할 수 있도록 소형화와 경량화에 집중하고 있다. 3D 프린터를 통해 장비의 생산단가를 낮추고 대량생산하는 기술도 연구 중이다.

지난 10일 NEMO 2022가 개최된 서울 강남 코엑스에선 카카오모빌리티의 MMS 장비 ‘아르고스’가 전시됐다. 가로·세로·높이 각각 45㎝·22㎝·33㎝ 육면체 외형에, 360도 방향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아르고스는 자율주행 로봇에 탑재돼 코엑스 실내공간의 고정밀지도를 만들고 있었다. 무게는 15㎏ 이하, 최대 200m 거리 인식이 가능한 라이다, 고해상도 카메라 4기, 정밀 측위용 안테나를 탑재했다. 이를 통해 전국 고속도로와 국도 1만4000㎞, 도심 내 도로 3500㎞ 등 총 1만7500㎞ 구간과 코엑스 주차장의 고정밀지도를 이미 제작했다.

카카오모빌리티가 만든 지하주차장의 고정밀지도(오른쪽). /카카오모빌리티 제공

이에 대응하는 네이버랩스의 기술은 아크버스로 불린다. 카카오모빌리티처럼 자율주행 서비스를 준비하진 않지만 자율주행 AI 개발사를 대상으로 기업간거래(B2B) 사업모델을 염두에 두고 있다.

네이버랩스는 MMS 장비 ‘R1′을 개발했다. 다수의 2차원 항공사진을 촬영해 하나의 3차원 이미지로 복원하는 기술을 함께 사용한다. 석상옥 네이버랩스 대표는 “라이다 센서 등을 활용한 노동집약적인 방식을 쓰는 경쟁사들보다 비용을 줄이고 효율을 높일 수 있다”라며 “일본 소프트뱅크도 우리의 이런 기술이 우수하다고 평가하고 협력을 결정했다”라고 말했다. 주차장, 지하터널 등 항공사진 촬영이 불가능한 장소를 측위하는 소프트웨어 ‘알트라이브’도 최근 공개했다.

네이버랩스의 고정밀지도 제작용 로봇. /네이버랩스 제공
항공사진과 지상 MMS를 복합적으로 활용하는 네이버랩스의 고정밀지도 제작 방법. /네이버랩스 제공

네이버랩스는 소프트뱅크와 손잡고 올해 일본의 도시 하나를 고정밀지도로 만드는 프로젝트에 착수한다. 성공하면 일본 내 다른 지역과 국내 도시로도 확장한다. 국내에선 지난달 11일 복잡한 도심 지역인 서울 강남의 61㎞ 구간의 고정밀지도를 만들어 선보였다. 아르고스처럼 실내공간 측정용 로봇 ‘M1′도 있어, 상반기 완공될 제2사옥의 고정밀지도 제작에 쓰일 예정이다.

네이버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알트라이브'를 활용한 지하 자율주행. /네이버랩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