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월드 첫 페이지에서 스크롤을 끝까지 내리면 이 같은 작은 글씨가 보인다. /T월드 캡처
여러 단계를 거쳐 신청 거의 마지막 단계인 '통신자료 제공 내역 조회'를 들어가 보면 '조회 결과가 없습니다'라는 문구가 나온다. 신청을 해본 적 없다는 의미이지만, 이용자들은 다른 기관이 조회한 적이 없다는 의미로 잘못 읽을 수 있다. /이씨 제공, T월드 캡처

회사원 이모(48)씨는 통신사가 외부에 제공한 통신자료 제공내역을 조회하기 위해 SK텔레콤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홈페이지(T월드) 첫 화면에서 스크롤을 끝까지 내려 이용약관 옆에 있는 ‘개인정보 이용내역’이라는 작은 글씨를 찾아야 했다. 개인정보 이용내역이 무엇인지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나오고 다시 한 번 ‘개인정보 이용내역 조회하기’를 눌러야 한다. 본인인증을 거친 뒤, 개인정보 이용 현황이 나오면 다시 스크롤을 끝까지 내려 ‘통신자료 제공 내역 조회 및 통신자료 제공 사실 확인서를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를 클릭해야 한다.

이씨는 세 차례나 같은 질문을 묻고 또 묻는 절차를 거쳐 신청 마지막 단계에 도착했다. ‘통신자료 이용내역 조회’라는 큰 제목이 보이고, 그 아래로는 ‘조회 결과가 없습니다’라는 문구가 떠 있었다. 이씨는 SK텔레콤이 외부기관에 통신기록을 제공한 사실이 없는 줄 알고 홈페이지를 나올 뻔 했지만, 다행히 사실 확인서를 요청해본 적이 없다는 뜻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위쪽으로 파란 신청 버튼이 보였다. 이를 클릭하니 ‘진짜’ 마지막 단계인 팝업창이 떴다. 신청 버튼을 여러 번 눌러도 처리되지 않았다. 그는 무려 40분이나 소요된 이 대장정을 중도 포기해야할지 심각하게 고민하다 주변에 SOS를 쳤다.

이씨는 “정답은 오른쪽 스크롤을 다시 내려 정보를 받아볼 이메일 주소를 입력하고 약관·정책을 동의한 뒤 신청 버튼을 눌러야 모든 절차가 마무리되는 것이었다”라면서 “통신사가 통신자료 제공 내역 신청을 어렵게 만들어 의도적으로 감추려한다는 느낌이 컸다”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마지막 단계에서 정상 신청을 하기 위해서는 오른쪽 스크롤을 눌러 추가 정보를 입력해야 한다. /T월드 캡처

4일 현재 네이버, 구글 등 주요 포털 등에서는 이씨 같은 사용자를 위한 ‘통신자료 제공내역 열람(조회) 신청 방법’ 등에 대한 매뉴얼이 여러개 올라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범죄자뿐 아니라 정치인, 기자, 일반인 등까지 전방위로 통신 내역을 들여다본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를 확인해보려는 수요가 커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통신사에서 이를 찾아볼 수 방법이 직관적이지 않아 애를 먹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SK텔레콤을 포함한 통신 3사의 통신자료 제공 내역을 모두 신청해 봤다. 모두 매뉴얼을 참고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복잡했다.

SK텔레콤의 경우 모바일에서도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사용자 환경이 다른 만큼 ‘개인정보 이용내역’ 찾기부터 만만치 않다. 스크롤만 내리면 되는 게 아니라 왼쪽에 있는 목록 아이콘(≡)을 누른 뒤 페이지 가장 아래 있는 개인정보 이용내역 글씨를 찾아야만 한다. 나머지는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

◇ 오죽 어려우면… 통신내역 신청 매뉴얼 우후죽순

KT는 홈페이지에서 '고객지원'을 눌러야 한다. /KT닷컴 캡처

KT(KT닷컴)에도 마찬가지로 홈페이지 하단에 개인정보 이용내역이 있지만 이를 클릭했다간 시간만 허비하니 주의해야 한다. 휴대폰 결제, 본인확인 등의 이유로 동의 하에 개인정보를 이용한 내역만 주르륵 뜨기 때문이다. 매뉴얼을 보니 첫 페이지 상단에 있는 ‘고객지원’ 메뉴를 눌러야 한다. 이후 스크롤을 해 하단에 있는 서비스 이용 꿀팁까지 내려야 하는데, ‘펼치기’를 눌러야만 비로소 ‘통신자료 제공내역‘이 뜬다. 이를 클릭하면 본인인증을 거쳐 신청이 가능한 구조다. SK텔레콤보다 절차가 다소 간소했던 반면 해당 메뉴를 찾는 것은 매뉴얼 없이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서비스 이용 꿀팁까지 스크롤을 내린 뒤 '펼치기'를 눌러야지만 비로소 '통신자료 제공내역'이 뜬다. /KT닷컴 캡처

인내심을 요구하는 SK텔레콤이나 KT의 신청 절차와 비교해 본다면, LG유플러스는 3단계 정도로 간소하다. 눈만 부릅뜨면 된다. 홈페이지(U+샵) 하단까지 스크롤을 내린 뒤 가장 오른쪽에 있는 작은 글씨 ‘통신자료 제공사실 열람’을 찾아 클릭하면 본인인증, 이메일 등 받아볼 정보만 입력하면 끝이다. 다만 일부 이용자들은 이런 메뉴를 찾을 수 없어 네이버 검색창에 ‘LG유플러스 통신자료제공내역’을 치면 해당 페이지가 바로 연결된다는 매뉴얼이 있으니 참고해볼 만하다.

U+샵 하단에 '통신자료 제공사실 열람'이라는 작은 글씨가 보인다. /U+샵 캡처

◇ 누구를 위한 통신사? 정보제공은 순순히, 확인은 어렵게

공수처 등 수사기관이 영장도 없이 개인의 통신자료를 조회하는 법적 근거는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제3항이다. 이 조항은 “전기통신사업자는 법원, 검사 또는 수사관서의 장, 정보수사기관의 장이 재판, 수사, 형의 집행 또는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위해를 방지하기 위한 정보수집을 위해 자료의 열람이나 제출을 요청하면 그 요청에 따를 수 있다”라고 돼 있다. 통신사는 이에 반드시 응할 의무가 없으나 관행적으로 즉각 대응하고 있다. 범죄 혐의가 있는 개인에게 이런 사실을 사전 또는 사후 즉각 고지했을 경우 수사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는 만큼 이런 자유로운 통신자료 열람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민간인 사찰 의혹으로까지 퍼질 만큼 광범위하게 개인의 통신자료를 들여다보는 것은 형법상 직권남용 소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김진욱(법무법인 주원) 변호사는 “수사 대상이 아닌 기자, 기자 가족, 일반인 등의 통신자료까지 확인하는 것은 권한 행사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면서 “통신사 역시 권력기관의 요구에 쉽게 협조하는 것은 이용자 기밀을 얼마나 쉽게 취급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문제가 있다”라고 했다. 김 변호사는 “이런 제공사실을 이용자들이 확인하는 절차를 어렵게 하는 것 역시 통신사가 서비스를 하는 데 있어 이용자 권익을 얼마나 뒷전으로 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