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이은현

위메이드가 지난해 8월 출시한 모바일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미르4 글로벌 버전은 국내 게임사가 만든 대표 P2E(Play to Earn·게임으로 돈을 버는) 게임이다. 미르4는 국내 버전과 해외(글로벌) 버전으로 나뉜다. 국내 버전은 게임산업진흥법에 따라 가상화폐 서비스가 불가능하다. 미르4를 국내에서 P2E 게임으로 즐기기 위해서는 가상사설망(VPN)을 통해 가상의 인터넷프로토콜(IP)을 만들어 우회 접속해야 한다. 보름간 미르4 글로벌 버전을 직접 해봤다. 단, 국내에선 위법이라는 점을 고려해 제한적으로 체험했다.

미르4 글로벌은 게임 내 핵심 아이템인 흑철을 채굴, 가상화폐로 전환해 수익을 얻을 수 있는 P2E다. 돈을 벌 수 있는 게임이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받았다. 기자 역시 취재를 위한 목적이라고는 해도 ‘일확천금의 꿈’을 꾸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캐릭터를 만들고 스토리라인이나 개별 퀘스트(임무)를 수행하면 흑철이 들어온다. 퀘스트당 1000개 정도의 흑철이 들어오는데, 레벨이 어느 정도 오르면 수만개의 흑철이 가방 안에 모이게 된다. 이를 모두 쌓아 놓지 못하고, 중간중간 캐릭터나 아이템 강화 등에 사용하게 된다.

게임 체험을 위해 만든 캐릭터가 흑철을 캘 수 잇는 비천비곡 1층을 돌아다니는 모습. /미르4 글로벌 화면 캡처

흑철을 본격적으로 채굴하기 위해서는 흑철 채광지인 ‘비천비곡’이라는 지역에 가야 한다. 모든 이용자가 갈 수 있는 곳은 아니고, 캐릭터 레벨이 31을 넘어야 들어갈 수 있다. 캐릭터를 레벨 31로 키우는 게 흑철 채굴의 첫 번째 임무다. 이 상황에서 소지하고 있던 흑철의 양은 6만개 정도였다.

레벨 올리기는 쉬울 것으로 생각했다. 자동전투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스토리를 진행할 때마다 버튼을 눌러줘야 했고, 등장인물의 대화 장면도 이용자 개입이 필요했다. 하루 평균 3~4시간은 게임에 투자해야 나흘 만에 간신히 레벨 31에 오를 수 있다. 저녁 회식이라도 잡혀 있는 회사원들은 여간 키우는 게 쉽지 않다. 어린아이가 있는 유부남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렇게 일주일의 시간이 레벨 올리는 데에만 허비됐다.

레벨 31이 되어 비천비곡에 들어가게 됐다. 비로소 흑철을 캐 돈을 벌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을 갖추게 된 셈이다. 하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기자의 오판. 비천비곡에는 기자와 같은 사람이 족히 수백명은 돼 보였다. 미르4는 특정 광물이나 약초를 캘 때 선점한 이용자에 우선권을 준다. 비천비곡의 모든 흑철 광산에는 이미 다른 이용자가 선점한 상태였다. 광산이 리젠(재등장)하는 자리에도 수십명의 이용자가 기다리고 있다. 선점 이용자를 살해(?)하고 광산을 차지할 수도 있지만, 레벨 31로 괜한 시비을 걸어봤자 나만 드러 누울 뿐이다. 레벨 31은 흑철을 캘 수 있는 시작점이나, 동시에 흑철도 못 캐고, 빼앗지도 못하는 지지부진한 지루함이 밀려오는 때이기도 하다.

비천비곡에는 흑철이 곳곳에 있지만 다른 이용자가 채굴을 하고 있으면 기다리거나 전투로 빼앗아 채굴을 해야한다. /미르4 글로벌 화면 캡처

다른 이용자의 채굴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그 자리에 광산이 다시 나타날 때까지는 1시간 이상이 걸린다. 끈기와 인내로 버텨 광산을 차지 했더니, 이번엔 다른 이용자의 공격이 시작됐다. 반격을 위한 화려한 스킬 발동도 전혀 소용이 없었다. 이미 사망한 기자의 캐릭터는 가장 가까운 도시에서 경험치 일부를 잃고 부활했다. 시간을 더는 허비할 수 없어 흑철을 직접 캐는 방법이 아닌 일일 퀘스트를 공략하는 방법으로 흑철 입수에 나섰다.

미르4에서는 일정 퀘스트 보상으로 흑철을 준다. 퀘스트 레벨에서 달라지긴 했지만 레벨 30대에서 갈 수 있는 퀘스트는 적게는 800개에서 많게는 1000개의 흑철을 준다. 흑철 퀘스트는 대부분 하루에 3번 정도를 수행할 수 있어 퀘스트를 한 바퀴 돌고 나면 2만개 정도의 흑철이 쌓인다. 중간중간 캐릭터 강화를 위해 흑철을 썼고, 일주일간 10만여개의 흑철이 모였다. 레벨도 흑철을 드레이코라는 유틸리티 코인(특정 플랫폼에서만 사용하는 가상화폐)으로 교환이 가능한 40으로 올랐다.

흑철 10만개를 모으면 드레이코 1개로 교환할 수 있다. 이 드레이코를 위메이드의 가상화폐 지갑인 ‘위믹스 월렛’에서 위믹스로 다시 바꾸면 된다. 위믹스는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인 ‘빗썸’에서 현금화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모두 해내려면 미르4뿐 아니라, 위믹스 월렛, 빗썸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과 계정을 모두 등록해야 한다. 게임만 한다고 돈을 벌 수 있지는 않았다.

보름을 투자해 겨우 흑철 10만개를 모았건만, 1드레이코는 0.03위믹스(지난해 12월 31일 기준) 밖에 되지 않았다. 1위믹스로 바꾸기 위한 드레이코의 수량은 33개쯤으로, 흑철이 330만개 있어야 하는데, 이는 하루 2만개의 흑철 획득 시간을 고려하면 170일이 걸리는 셈이다. 1위믹스는 3일 현재 기준 시세가 1만2000원쯤이다. 보름 동안 배우자에게 원성을 들어가며 게임을 한 결과가 겨우 360원이라니, 게임으로 돈을 벌겠다는 원대한 꿈은 오간 데 없어졌다. 더 게임을 해야 하나라는 회의감도 몰려왔다.

미르4 글로벌에서는 레벨 31 이상이 갈 수 있는 비천비곡에서 가상화폐로 전환할 수 있는 흑철을 캘 수 있다. /미르4 글로벌 화면 캡처

캐릭터의 레벨을 더 올리고, 시간을 더 투자해 흑철 330만개를 획득할 수 있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고 해도 ‘미르4로 돈을 번다’라는 성과를 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결론이다.

국내 이용자 커뮤니티에서는 하루 30만~40만개의 흑철을 모을 수 있다는 얘기도 전해지지만, 기자 입장에서는 단군 신화와 같은 말로 들렸다. 직장인이 하루 대부분을 게임에 매달리는 것도 불가능하거니와 그렇게 해서 1위믹스를 획득해봤자 겨우 1만2000원이다. 2022년 법정 최저임금은 9160원으로, 8시간 일한다고 가정했을 때의 일 환산 최저임금은 7만3280원에 달해 1위믹스의 6배를 넘는다. 땀 흘린 노동의 대가가 더 유익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미르4의 경우 하루 24시간씩 한 달 열심히 흑철을 모으면 40만원 정도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한다. 다른 P2E 게임도 사정은 비슷하다. 들이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실제 주어지는 보상은 그리 크지 않은 것이다.

이 때문에 현재의 P2E 게임들은 대부분 동남아시아나 남미, 동유럽 등 소득 수준이 높지 않은 개발도상국에서 큰 인기가 있다. 필리핀을 예로 들면 교사나 경찰의 월급이 1만5000페소로, 우리 돈으로 치면 35만원 정도다. 정보기술(IT) 관련 직종의 월급도 1만5000페소로 비슷하다. 따라서 이 나라 샐러리맨들은 미르4를 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지만, 한국은 아니다.

보름간 체험해 본 P2E 게임은 국내 게임업계가 주장하고 있는 미래 먹거리로서의 경쟁력이 거의 없어 보였다. 물론 단순히 아이템을 얻어 돈으로 바꾸는 것만이 P2E 게임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실상 많은 이용자들이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이 부분이기에 많은 설명과 기술 개발이 필요해 보인다.

게다가 ‘게임하며 돈을 번다’는 대전제를 만족한다고 해도 이른바 ‘노가다’로 불리는 MMORPG의 고질병 ‘무한 노동’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점에서 게임에 대한 재미를 느끼기도 어려웠다. 누가 회사를 그만두고 P2E 게임으로 돈을 벌겠다고 한다면? 솔직히 도시락을 싸 들고 말려야 할 것 같다.

☞P2E

‘플레이투언(Play to Earn・P2E)’은 게임을 하면서 돈을 번다는 개념으로, 최근 게임업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게임 캐릭터나 아이템에 대한 소유권을 블록체인 대체불가능한토큰(NFT)으로 이용자에게 부여, 가상화폐처럼 사고 팔 수 있게 해 현금화 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베트남 게임 스타트업 ‘엑시인피니티’가 인기를 끌면서 관심이 높아졌으며, 국내에서는 위메이드가 NFT를 활용한 미르4(글로벌 버전)을 내놔 주목 받았다. 미르4는 동시접속자 수가 130만명을 넘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 다만 한국에서는 ‘게임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라 게임 내 재화의 환금은 금지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