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서울 영등포구 루나미엘레에서 열린 농어촌지역 5G 공동이용망 시범상용화 시연에서 참석자들이 5G 28㎓ 지하철 와이파이 서비스 품질 향상을 위한 협약서에 서명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황현식 LG유플러스 대표이사, 유영상 SK텔레콤 대표이사, 구현모 KT대표이사, 김상범 서울교통공사 사장, 전경훈 삼성전자 사장. /연합뉴스

정부가 2018년 5세대 이동통신(5G) 주파수를 할당하며 올해까지 28㎓(기가헤르츠) 기지국 총 4만5000대를 구축하겠다고 약속했던 통신사의 계획 달성이 불가능해지자, 사실상 유예 기간을 부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올해 연말까지 실제 구축된 기지국이 아닌 ‘신고’된 기지국 대수를 기준으로 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다. 이를 통해 통신 3사는 약 4개월의 시간을 더 벌 수 있게 됐다. 그동안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비롯, 정부는 통신 3사의 기지국 구축 기간에 “유예는 없다”며 주파수 할당 취소 등의 강경 입장을 거듭 밝혀왔었다.

30일 과기정통부가 발표한 ‘5G 이동통신 할당조건 이행점검 기준’에 따르면 실제 구축이 완료된 기지국이 아닌 올해 12월 31일까지 ‘신고’된 기지국을 기준으로 한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국내 이동통신 3사로부터 31일까지 서류 등을 통해 구축할 기지국 개수를 제출받은 후 내년 4월 30일 실제 구축(검사완료 포함)됐는지 여부를 점검해 ‘최종 구축수량’으로 인정한다는 계획이다.

이동통신 3사는 지난 2018년 정부로부터 5G 주파수 할당을 받으며 약속한 기지국 구축을 올해 말까지 마무리해야 한다. 업체별로 3.5㎓와 28㎓ 기지국 각각 2만2500대, 1만5000대다. 이 중 2019년 세계 최초로 5G를 상용화하며 정부와 통신 3사가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LTE보다 20배 빠른 속도’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28㎓ 기지국 구축이 선결 과제로 꼽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 2018년 배포한 5세대 이동통신(5G) 주파수 할당 공고 발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하지만 올해 연말까지 구축됐어야 할 28㎓ 기지국 총 4만5000대 가운데 실제 구축된 기지국은 11월 말 기준 312대로, 구축 이행률 0.7%에 그친 것으로 드러났다. 이미 통신업계 안팎에선 올해 통신 3사가 약속했던 기지국 구축 계획을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속해서 제기됐었다. 실제 올해 10월 열린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참석했던 통신사 한 고위 임원도 “(기지국 구축이)현실적으로 어렵다”라고 했었다.

정부는 2018년 주파수 할당 공고에서 의무 구축수량 대비 구축수량이 10% 미만이거나, 평가결과 점수가 30점 미만인 경우 할당을 취소한다고 했었다. 이를 적용하면 통신 3사에 주파수 할당 취소 처분이 불가피하다. 이날 정부도 “망 구축 의무 수량의 10%를 넘지 못할 경우 실제 평가절차에 진입할 수 없도록 했다”고 강조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 2018년 배포한 5세대 이동통신(5G) 주파수 할당 공고 발췌. 의무구축 기지국은 설치된 장비 기준이라고 명시돼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그러나 이날 발표된 의무 구축 수량 기준이 실제 구축이 아닌 ‘신고’가 되면서, 정부가 통신 3사의 시간을 벌어줬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8년 연도별 망 구축 의무를 설명할 당시 자료를 보면 과기정통부는 ‘설치된 장비 기준’이라고 명시했다.

업계에 정통한 관계자는 “통신 3사가 일단 구축 계획인 기지국 수만 제출한 후 구축을 완료하면 되니 사실상 4개월이라는 시간을 번 셈이다”라며 “유예기간을 주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밝혀왔었는데 이게 유예기간이 아니면 뭔지 모르겠다”라고 했다.

앞서 임혜숙 과기정통부 장관은 28㎓ 기지국 구축 의무이행 기간을 유예하지 않겠다고 수차례 밝힌 바 있다. 통신사들은 기지국 구축 계획 달성이 어렵다고 보고 지속해서 기간 유예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이행점검 기준은 내부적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통신사에 별도 유예기간을 준 것은 아니다”라며 “LTE 때도 그렇고 모두 기준대로 해왔다”라고 했다. 이어 “내년 4월 지침상 신고된 기지국의 실제 운영된 것을 보고 판단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과기정통부가 이날 통신 3사가 제안한 28㎓ 지하철 와이파이 공동구축에 대한 의무국수 인정을 받아들인 것도 논란이 일고 있다. 실제 한 통신사가 1대의 기지국만 구축해도, 이를 3대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