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사들이 연이어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시키고 있다. 업계에서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사업다각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국내 게임사들이 콘텐츠와 엔터테인먼트 등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게임에 집중하는 기존 사업 모델에서 벗어나 사업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것이다. 지식재산권(IP)을 웹툰, 영화, 드라마 등에서 활용하는 ‘원 소스 멀티유즈’는 물론 엔터테인먼트 전문가를 영입해 사업 확장에 열을 올리고 있다.

28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기업공개(IPO)를 앞둔 크래프톤은 지난 26일 기자간담회에서 보유 중인 IP를 다양한 미디어 형태로 확장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크래프톤은 사업의 방향성, 성장 가능성, 공모 자금 활용 방안과 함께 IP 활용 계획에 대해 공들여 설명했다. 크래프톤은 대표 IP인 배틀그라운드를 글로벌 메가 IP로 키우겠다는 의지를 거듭 드러냈다. 2017년 출시한 온라인게임 ‘배틀그라운드’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일명 ‘원 히트 원더’라는 지적에서 벗어나기 위한 조치다.

지난 26일 오전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크래프톤의 배동근 CFO, 김창한 대표, 장병규 의장(왼쪽부터)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크래프톤 제공

크래프톤은 새로운 전략으로 ‘펍지 유니버스’를 통해 기존 IP를 엔터테인먼트 영역으로 확장시키겠다고 밝혔다. 김창한 크래프톤 대표는 “펍지라는 IP를 활용해 여러 가지 형태의 미디어 포맷으로 펍지 세계관을 확장하는 게 목표다”라고 했다. 크래프톤에 따르면 펍지 유니버스는 게임을 통해 탄생한 강력한 IP를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영역으로 확장시키는 작업을 말한다. 크래프톤은 생존을 테마로 한 배틀그라운드 스토리를 미디어, 플랫폼, 콘텐츠로 재생산해 잠재력을 극대화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영도 작가의 유명 판타지 소설 ‘눈물을 마시는 새(눈마새)’를 활용해 게임 제작 등 다양한 IP도 발굴해 나가기로 했다. 김 대표는 “판타지 IP가 ‘반지의 제왕’이나 ‘왕좌의 게임’ 등으로 확장되는 것처럼 눈마새도 글로벌 시장에서 새로운 판타지 월드로써 확장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눈마새는 현재 미국 유명 콘셉트 아티스트인 이안 맥케이그와 비주얼 작업 협업 중으로 앞으로 애니메이션, 드라마, 게임 등으로 미디어를 넓혀나간다.

넥슨도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데 적극적인 게임사다. 넥슨은 지난해부터 엔터테인먼트업계 인사를 연이어 영입, 사업 확장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해 넥슨은 월트디즈니 최고전략책임자(CSO)였던 케빈 메이어 전 틱톡 CEO를 신임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그는 디즈니가 픽사와 마블 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최근 넥슨 수석부사장 겸 최고전략책임자(CSO)로 선임된 닉 반 다이크 역시 디즈니 출신의 엔터테인먼트 전문가다. 닉 반 다이크 부사장은 10여년간 디즈니에서 기업전략과 사업개발을 맡은 전략 수립 전문가다. 넥슨은 닉 반 다이크 부사장을 선임하면서 미국 LA에 ‘넥슨 필름&텔레비전’을 설립할 계획도 밝혔다. 이 조직은 기존 넥슨의 인기 IP인 ‘던전앤파이터’ ‘바람의나라’ ‘메이플스토리’ 등을 글로벌 IP로 키우는 역할을 맡게 된다.

스마일게이트 크로스파이어 게임 화면. /스마일게이트 제공

게임 IP를 확장해 만든 콘텐츠가 성공한 사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다중접속온라인역할수행게임(MMORPG) ‘로스트아크’, 1인칭 슈팅게임(FPS) ‘크로스파이어’ 등으로 유명한 스마일게이트는 지난해 중국에서 크로스파이어 IP를 활용한 e스포츠 드라마 ‘천월화선’을 선보였다. 텐센트를 통해 배급 중인 이 드라마는 누적 시청 수 19억회를 기록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스마일게이트는 크로스파이어 IP를 앞세워 할리우드에 진출한다. 스마일게이트 관계자는 “영화 제작사와 배급사는 각각 오리지널 필름과 소니픽쳐스로 확정된 상태다”라고 했다. 스마일게이트는 게임 IP 외에도 신규 IP를 개발하기 위해 영화 ‘신과 함께’를 만든 리얼라이즈 픽쳐스와 지난해 조인트 벤처를 설립했다. 스마일게이트 관계자는 “캐릭터 사업 진출 등 다양한 콘텐츠 분야의 신규 IP를 발굴하고 하나의 세계관으로 연결되는 ‘유니버스’의 구축을 시도하는 등 궁극적으로 글로벌 IP 명가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목표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게임사가 IP 확장 없이는 살아남기 힘든 상황이 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김정태 동양대 게임학부 교수는 “게임사들의 경쟁이 너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사업다각화는 필수적인 상황이다”라고 했다. 다만 현재 게임사들이 진행 중인 IP 확장이 이전과는 차이가 있다고 보고 있다. 김 교수는 “성공한 IP를 인접 장르로 확장하는 건 트랜스미디어 전략으로, 게임사들은 트랜스미디어로 만들어낸 세계관을 더욱 공고히 강화시키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라고 했다.

김영진 청강대 게임학과 교수는 “게임 산업은 이제 하나의 단일 콘텐츠가 아닌 정보통신(IT) 기술의 최첨단에 서 있는 산업이다”라며 “과거에는 확장된 IP가 콘텐츠의 하나였다면 이제는 로블록스처럼 젊은 세대가 많은 시간을 보내는 가상 세계 자체가 확장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과거에는 하나의 IP로부터 단절된 여러 개의 콘텐츠가 파생되는 형태였다면, 이제는 통합된 가상 세계가 점점 넓어지는 형태를 띤다는 것이다.

위정현 게임학회장(중앙대 경영학과 교수)은 “K팝이나 웹툰 등 게임 외의 다른 콘텐츠 산업이 확장하는 것을 보며 게임사들이 자극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라며 “과거 게임은 대작 PC 온라인 게임으로 글로벌 시장을 노리겠다는 포부가 있었는데, 이게 현재 주춤한 상태다”라고 했다. 그는 “게임이 하지 못했던 것을 BTS를 내세운 K팝, 네이버, 카카오 등의 웹툰 등이 해내는 것을 보고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