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로고. /AP=연합뉴스

글로벌 최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업체 넷플릭스와 망 사업자 SK브로드밴드가 ‘망 사용료’를 두고 오랜 갈등을 벌인 끝에 지난달 25일 법원이 ‘두 회사는 협상에 임하라’는 결론을 내놨다. 이번 1심 판결로 넷플릭스 외에 다른 해외 콘텐츠 제공자(CP)에도 망 사용료를 부과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망을 깔고, 콘텐츠를 전송하는 역할을 맡는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ISP)들이 당장 해외 CP에 망 사용료를 부과하려는 움직임은 없다. 다만 OTT 등 온라인 동영상 소비 추세가 가속화되면서 ISP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투자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ISP의 다음 타깃은 트래픽(데이터 전송량)을 가장 많이 잡아먹는 구글이 될 것이란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온다. 지난해 4분기 기준 구글의 트래픽 사용량은 넷플릭스의 5배에 달한다.

이번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의 1심 판결문을 보면, 구글은 금전으로 망 사용료를 지급하지 않는 대신 국내 ISP들과 별도의 계약을 체결해 국내 ISP에 다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망 사용료의 지급을 대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글은 이것이 망 사용료를 대체하는 대가라는 입장이지만, ISP 입장에선 전혀 정산을 하지 않고 있는 수준이기 때문에 이번처럼 금전을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SK브로드밴드 관계자는 “이번 넷플릭스와 1심 판결을 통해 다른 글로벌 CP에도 망 사용료를 부과할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라고 말했다.

◇ 넷플릭스는 새 발의 피…‘트래픽 공룡’ 구글이 다음 타깃?

2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지난해 10~12월 기준 국내에서 서비스하는 CP 중 유튜브를 운영하는 구글은 가장 많은 25.9%의 트래픽을 차지했다. 이는 트래픽 2위 사업자인 넷플릭스(4.8%)는 물론, 이미 망 사용료를 내고 있는 네이버(1.8%), 카카오(1.4%)를 다 합친 것보다도 많다.

지난해 10~12월 구글, 넷플릭스 등 6개 콘텐츠 제공자(CP)의 국내 트래픽 점유율. 구글이 25.9%로 가장 많은 트래픽을 차지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그럼에도 망 사업자들이 넷플릭스만 붙잡고 갈등을 벌이는 것은, 협상을 벌이기에 구글의 트래픽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졌고, 초창기에 이를 제대로 짚고 넘어가지 못한 탓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전한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초기에는 구글 등 정보기술(IT) 공룡들을 통해 ISP도 함께 성장해 나가는 구도였지만, 최근 들어 급격하게 늘어난 트래픽은 또 다른 설비 유지, 보수 비용 등 손해로 직결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라고 전했다.

다른 CP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은 2019년 국정감사에서 “국내 기업은 망 사용료 부담 때문에 고화질 동영상 서비스를 못 하고 있는데 외국 기업은 망 사용료 부담이 없으니 고화질 동영상 서비스가 가능하다”라며 “불공정한 경쟁으로 동영상 시장은 해외 기업이 장악하고 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도 2017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구글과 페이스북은 망 사용료를 안 낸다”라고 했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국내 ISP에 연간 1000억원가량의 망 사용료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부담을 국내 업체만 지는 것은 ‘역차별’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 “다른 CP에 청구서 내밀면, 구글도 동참해줄 것으로 기대”

구글은 이런 주장에 대해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넷플릭스발(發) 망 사용료 논쟁이 구글로까지 불붙는 것을 경계하는 모습이다. 다만 구글은 그간 국내에서의 콘텐츠 전송과 품질 관리는 망 사업자의 의무(망 중립성)이고, 자사에 주어진 국제 망 전송 의무는 충분히 다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2014년 LG유플러스를 시작으로 이동통신 3사의 심장부에 트래픽을 감소시킬 수 있는 ‘캐시서버’를 가져다 두기도 한 게 그런 노력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국내 망 사업자와 구글이 일대일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는 날은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넷플릭스와 달리 유튜브의 트래픽이 압도적으로 높은 점이 역설적으로 망 사업자의 협상 추진을 주저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구글과 망 사용료 분쟁이 붙었다가 유튜브 송출에 차질이 빚어지기라도 하면 망 사업자 역시 소비자 불만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망 사업자들이 구글에 망 사용료를 받지 못해 생기는 경제적 손해보단 소비자 불만에 더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관계자는 “망 사업자가 당장 협상을 시도하기보단 장기적으로 CP들이 하나둘 망 사용료를 내는 분위기가 확산되면 자연스럽게 구글도 동참하게 될 것이란 기대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 이번 넷플릭스에 승소한 SK브로드밴드는 지난 2019년 페이스북과 협상을 통해 망 사용료를 받기로 한 바 있다. 즉, ‘슈퍼스타(구글)’에는 당장 청구서를 못 내밀겠지만, 일단 카카오·네이버를 시작으로, 페이스북, 넷플릭스 등에 망 사용료를 부과할 수 있다면 구글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란 기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