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망사용료.

세계 최대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OTT) 넷플릭스와 국내 초고속인터넷 사업자인 SK브로드밴드가 ‘망 사용료를 내야 한다’는 주장을 두고 1년 넘게 갈등을 벌인 가운데 법원이 ‘두 기업이 협의해 결정하라’는 결론을 내렸다. 망 사용료를 내야 한다는 SK브로드밴드 측에 손을 들어준 것인데, 실제 어느 정도를 내야할지를 양측 몫으로 남겨둬 두 회사의 신경전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SK브로드밴드는 막대한 트래픽(자료 전송량)을 유발 중인 넷플릭스가 망 사용료를 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용료를 한 푼도 안 내는 것은 ‘무임승차’라는 주장이다. 넷플릭스는 ‘망 중립성(net neutrality)’이라는 원칙을 들어 망 사용료를 낼 의무가 없다는 소송(채무 부존재 확인 소송)으로 맞섰다. 망 중립성은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통신 회사)가 인터넷 네트워크를 통해 전송되는 모든 트래픽을 그 내용이나 유형, 제공 기업, 이용자 등에 관계없이 동등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지난 25일 1심 재판부는 넷플릭스의 청구 가운데 협상 의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해달라는 부분은 각하하고, 망 사용료를 제공할 의무가 없다는 점을 확인해달라는 부분을 기각하면서 사실상 패소 판결을 내렸다. 넷플릭스에 망 사용료 협상 테이블로 나오라는 취지로 풀이됐다.

콘텐츠 소비 흐름이 OTT, 유튜브 등으로 빠르게 넘어가고, 이에 따라 인터넷 망 사업자들의 트래픽 과부하, 망 안정 운용을 위한 추가 투자 부담은 커지고 있다.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의 논쟁은 다른 기업으로 불붙을 조짐도 나온다. ‘망 중립성'은 무엇일까? 예외 없이 지켜야 하는 것일까? 두 회사 갈등을 정리했다.

◇ 소송까지 간 ‘망 중립성'이 뭐길래

언뜻 복잡해 보이는 망 중립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터넷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부터 이해해야 한다. 인터넷에는 다양한 참여자가 있다.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ISP)와 콘텐츠제공자(CP), 이용자로 크게 구분하기도 한다. SK브로드밴드처럼 ‘망 사업자’로 불리기도 하는 ISP는 네트워크에 접속 가능하도록 물리적인 연결을 제공하는 역할을 맡는다. CP는 네트워크를 통해 접속한 인터넷상에서 우리가 소비하는 서비스(콘텐츠)를 제공한다. 넷플릭스 외에 네이버, 카카오 같은 기업도 여기에 해당한다.

콘텐츠가 이동하기 위해서는 이를 주고받는 컴퓨터가 서로 연결돼 있어야 하는데 이를 모두 직접 연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래서 인터넷은 가까운 곳은 직접 연결하고, 먼 곳은 직접적 연결이 돼 있는 여러 곳을 거쳐 가는 구조로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서울, 대전, 대구, 부산을 잇는 모든 도로를 건설하는 대신, 서울과 대전, 대전과 대구, 대구와 부산을 잇는 도로만 건설하고, 서울부터 부산까지는 이 도로를 거쳐 갈 수 있도록 하는 ‘자동차 도로망’과 유사한 구조다. 이렇게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는 인터넷은 ‘콘텐츠 도착지’를 향해 상부상조의 약속에 따라 작동한다. 대전은 서울에서 전달받은 정보를 대구로, 대구는 이 정보를 부산으로 잘 전달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의 갈등도 여기서 출발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본사를 두고 있는 넷플릭스가 제작한 콘텐츠를 한국 부산까지 직접 전송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므로 국내 ISP가 이를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CP는 콘텐츠 제작이라는 의무 외에 이를 전송할 도로를 따로 건설해야 하는 부담까지 지게 된다는 주장이다.

넷플릭스 측은 “SK브로드밴드가 요구하는 방식의 망 사용료를 전 세계 어느 ISP에도 내고 있지 않다”라고 밝히고 있다. 또 “넷플릭스 콘텐츠 수요와 이에 따른 트래픽 증가로 SK브로드밴드의 수익과 서비스 가입자 역시 증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데이터 전송량이 급증하고 있는 만큼 사용료를 내야 한다는 게 SK브로드밴드의 주장이다. 넷플릭스뿐 아니라 구글(유튜브), 페이스북 같은 CP들을 통한 동영상, 영화, 게임, 클라우드(원격 컴퓨팅) 전송량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만큼 인터넷 망 추가 투자에 대한 부담 일부라도 이들이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지난해 4분기 집계에 따르면, 국내 일 평균 인터넷 트래픽의 26%는 유튜브가, 넷플릭스가 약 5%로 그 뒤를 잇고 있다. 이런 요구에 따라 실제 네이버·카카오는 연간 최대 1000억원 이상의 망 사용료를 ISP에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한국만 난리? 망 사용료 분쟁, 해외도 있나

세계 최대 OTT 넷플릭스에서 제공 중인 콘텐츠. /블룸버그

망 품질(속도) 유지를 위한 ISP의 부담이 과도해지고 있는 건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형 CP가 트래픽 상당량을 잡아먹으면, 다수 이용자들이 손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고민거리다. 이에 지난 2017년 미국 FCC(연방통신위원회)는 통신 회사들의 입장을 반영, 망 중립성 원칙을 완화한 상태다. 통신 회사들의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를 ‘공공 서비스’가 아닌 ‘정보 서비스’로 변경함으로써 필요한 경우 망 품질 관리를 위해 CP 트래픽을 제한할 수 있게 한 것이 골자다.

한국과 유럽은 망 중립성을 지켜야 하지만, 이용자가 피해를 입지 않도록 ISP가 합리적 관리를 할 수 있도록 예외를 두고 있다. 지난해 대형 CP가 국내 인터넷망의 안정적 서비스를 유지할 책임을 부과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일명 ‘넷플릭스법’이 시행된 것도 이런 일환으로 풀이되고 있다.

SK브로드밴드는 망 사용료를 못 내겠다는 넷플릭스가 미국, 프랑스 등 해외에서는 이런 흐름에 따라 어느 정도의 망 이용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넷플릭스 측은 이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일축하고 있다. 일각에서 제기된 일본에 지불하는 망 이용대가도 도쿄에 설치한 ‘오픈커넥트’ 유지를 위해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 받는 대가라고 선을 그었다. 오픈커넥트는 보다 적은 대역폭으로 장시간의 동영상을 제공할 수 있는 압축 기술 등 망 부하를 최소화하는 첨단 기술의 집약체라는 게 회사 설명이다.

1심 결과가 나온 지 사흘 뒤인 지난 28일 박정호 SK텔레콤 최고경영자(CEO)는 기자들과 만나 “모든 것이 결정 난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넷플릭스 CEO를 만날 시점이 다가왔다”라고 했다. 첫 공식입장이었다. 넷플릭스는 “공동의 고객(이용자)을 위해 SK브로드밴드와 협력하고, 오픈커넥트에도 지속 투자하겠다”는 입장만 밝힌 상태다. 업계는 이번 1심 결과에도 두 회사의 갈등이 장기전으로 갈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