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켓시위를 벌이는 한국민주제약노동조합 코오롱제약지부. /한국민주제약노동조합 코오롱제약지부

임금과 단체협약, 저성과자 해고 등으로 사측과 대립각을 세우는 코오롱제약 노동조합이 추석 연휴 이후 철야 근무를 거부하는 등 사실상 파업에 준하는 압박을 준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현실화 시 회사 제품은 물론, 국내 제약사들의 위탁생산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된다. 최근 ‘품귀현상’을 빚는 아세트아미노펜 성분 의약품 생산 독려 차원에서 대한약사회장도 코오롱제약 공장을 찾기도 했다.

코오롱제약 내부에서는 최근 해외 제약사들이 추진 중인 구조조정 ‘칼바람’이 이어지지 않을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저성과자 해고는 이를 위한 신호탄이라는 해석이다. 회사 측은 생산 차질을 우려하면서도 구조조정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약국 출입문에 코로나19 상비용 약으로 사용되는 감기약 품절 안내문이 붙어있다. /뉴스1

◇ 코오롱제약 노조, 근무 거부 이어 ‘총파업’ 검토

8일 한국민주제약노동조합 등에 따르면 코오롱제약 노조는 추석 연휴 이후 기존 피켓 시위에서 투쟁 수위를 높여 야간 근무를 거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사실상 부분 파업에 준하는 수위다.

박기일 한국민주제약노동조합 위원장은 “현재는 피켓 시위만 하고 있지만, 추석이 지나면 투쟁 수위 높일 것이다”라며 “공장 내 야간 근로가 있는데, 이를 거부하는 것으로 투쟁 지침 강화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장재철 민주제약노조 코오롱제약지부장도 “회사와 교섭 창구를 항상 열어 두고는 있지만, 요구 사항 관철이 안 될 경우 투쟁 수위를 높이며 총파업도 검토 중이다”라며 “우선 다음 주 14일쯤 다시 사측과 대화를 진행할 계획이다”라고 했다. 다만 그는 “사측이 교섭을 요구한 만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한다”면서 “무조건 떼쓰기식 파업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다음 주 중 코오롱제약 노사가 견해차를 좁히지 못할 경우 당장 야간부터 공장이 가동이 멈출 수 있다는 의미다. 코오롱제약 지부 조합원은 약 200명이다. 지난해 기준 코오롱제약 직원 수(392명)의 절반 수준이다. 대부분이 영업담당 직원이지만, 생산·지원에서 근무하는 인원은 50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미 노조는 노동위원회로부터 조정 중지 명령을 받은 뒤 파업 찬반 투표를 거쳐 정당한 파업권을 확보한 상태다.

코오롱제약과 위탁생산 계약을 맺은 국내 한 제약사 관계자는 “생산량을 최대한으로 끌어 올리고 있다고 들었지만, 여전히 아세트아미노펜 부족 현상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라며 “자칫 공급난이 더 심화할지 우려스럽다”라고 했다. 코오롱제약 관계자 역시 “근무 차질이 빚어진다면 제품 생산에서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아세트아미노펜은 타이레놀로 잘 알려진 해열진통제이다. 코로나19 유행과 독감이 겹치면서 해당 약품은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약국에서는 처방전을 받은 환자에게 제공하는 제조용 제품이 아닌 대신 판매용을 사용하는 일도 더러 발생하고 있다. 판매용 제품은 제조용보다 단가가 비싸다. 손해를 보더라도 일단 처방을 하고 보는 것이다. 이는 해열진통제를 구하기 위해 약국을 찾은 사람에게 제공할 물량이 없어지는 ‘악순환’으로 반복되고 있다.

이에 지난 8월 말 최광훈 대한약사회장은 아세트아미노펜을 생산하는 코오롱제약 대전 공장을 찾아 생산을 독려하기도 했다. 그러나 제조용 아세트아미노펜의 경우 대부분이 위탁생산을 하고 있어 단기간 내 생산을 늘리기 어려운 구조다.

피켓시위를 벌이는 한국민주제약노동조합 코오롱제약지부. /한국민주제약노동조합 코오롱제약지부

◇ 노사 갈등, 노조 위원장·저성과자 해고까지 ‘악화일로’

코오롱제약 노사의 갈등은 지난해부터 이어진 임금과 단체협약에서부터 비롯됐다. 그러나 이는 노조 위원장, 저성과자 해고로 이어지며 노사 관계가 더욱 복잡하게 얽히고 있다. 최근 저성과자에게 내린 ‘면직 처분’은 기름을 끼얹은 격이 됐다. 노조는 면직이 아닌 사실상 ‘해고’로 보고 있다.

박기일 위원장은 “취업규칙과 단체협약 내 저성과자에 대한 면직 처분은 없다. 징계 규정이 있는데 면직 처분을 했다”라며 “부당 노동행위 등으로 노동위원회에 접수를 준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특히 최근 외국계 제약사를 중심으로 불고 있는 ‘칼바람’이 국내 제약사로 번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온다. 올해 들어 한국노바티스, 한국화이자를 비롯해 외국계 제약사는 영업사원 등을 대상으로 한 희망퇴직을 시행 중이다. 코로나19로 대면 형태가 아닌 비(非)대면 영업이 확대하면서 인력을 감축해 비용을 절감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장재철 지부장은 “사측이 지난해 10월쯤부터 지난달까지 9명 정도 저성과자 역량강화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시행하며 면담을 진행해왔는데, 연속적으로 진행된 직원들의 경우 앞선 사례와 같이 해고 사례로 활용될 수 있다”라며 “역량강화와 같은 프로그램으로 직원이 해고된 사례는 회사 설립 이후 없었다”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