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초로 달에 사람을 보낸 아폴로 11호는 지구를 떠난 지 약 4일 만에 달에 도착했다. 반면, 5일 미국 스페이스X 발사체 ‘팰컨9′에 실려 우주로 떠난 한국 최초의 달 궤도 탐사선 ‘다누리’는 앞으로 약 4개월 후에 달에 도착할 예정이다. 최첨단 장비를 장착한 다누리가 50여년 전 구형 우주선보다 달에 가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답은 지구에서 달로 가는 전이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구에서 달로 가는 방법은 크게 ▲직접 전이 ▲달 궤도 전이 방식(BLT/WSB) ▲위상 전이 ▲나선 전이 등 4가지가 있다. 아폴로 11호는 지구에서 달을 향해 포물선을 그리며 가장 빠르게 가는 직접 전이 방식을 택했다. 반면, 사람이 아닌 탑재체를 싣고 가는 다누리는 돌아가지만, 연료 소모가 적은 BLT/WSB전이를 선택했다. 직접 달로 향하는 방식에 비해 연료 소모량을 약 25% 줄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누리호는 BLT라 불리는 궤도를 타고 달까지 갈 예정이다. 이 궤도는 지구에서 약 150만km 떨어진 라그랑주 포인트 ‘EL1′를 거쳐 달 궤도로 진입하는 방식이다. EL1은 지구의 중력과 태양의 중력이 평형 상태를 이루는 곳이다. 탐사선이 연료를 소모하지 않고도 한 장소에 머무를 수 있어 우주 휴게소라고 불린다.
다누리호는 아폴로11호가 달 궤도에 도달하기까지 걸린 거리(34만km)의 약 10배에 달하는 궤적을 그리며 항해하기 때문에 4개월이라는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다. 다누리는 정상 진입 후 9번의 궤적 변경 기동을 거쳐 달 궤도로 진입하고, 이후 5차례 기동을 통해 목표 궤도인 100㎞까지 진입한다는 계획이다.
반면, 아폴로11가 채택한 직접 전이는 속도가 장점이지만, 연료 소모가 많다는 단점이 있다. 달에 안정적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달에 도착했을 때 속도를 줄여야 한다. 직접 전이를 방식에서는 속도가 빠른 만큼 감속도 많이 해야하기 때문에 감속 시 연료 소모도 극심하다. 연료 무게를 늘릴수록 탐사선에 싣고 갈 탑재체에 할당할 수 있는 무게가 줄어들고 설계 난도도 높아진다.
당초 다누리는 지구 중력을 활용해 지구 주변을 돌면서 달로 진입하는 위상 전이 방식으로 비행할 예정이었다. 위상 전이 방식으로 달에 도달하는 데에는 1~2개월 정도 걸리는 대신, BLT/WSB 전이 방식보다 연료 소모가 많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위상 전이 방식을 포기하고 BLT/WSB 전이를 선택한 것은 ‘무게’ 문제가 있었다. 당초 다누리의 무게는 550㎏을 목표로 기획됐으나, 설계가 진행되면서 628㎏까지 늘었다. 이에 따라 연료가 부족해졌고 임무 기한도 1년을 채우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번 다누리에는 미 항공우주국(NASA)의 ‘섀도캠’ 탑재체가 실려 가는 협업이 이뤄지는데, NASA가 새로운 궤적인 BLT/WSB를 제안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연구팀은 이 제안을 수용해, 궤도를 설계하고 NASA와 궤도 검증을 거쳐 이번 비행 방식이 결정됐다.
NASA와 항우연이 4개월 넘게 걸리는 항해궤도를 택하면서까지 섀도캠 탑재에 공을 들인 이유는, 이 카메라가 향후 달 탐사 프로젝트의 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은 오는 2025년까지 유인 탐사선을 달 표면까지 보내는 ‘아르테미스’ 계획을 추진 중이다. 여기에는 한국과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 22개국과 여러 민간 기업이 참여했다.
다누리는 성공적으로 달 고도 100㎞ 궤도에 진입하면 2023년 1월 시험기동을 시작해 2월부터 본 기동을 할 예정이다. 섀도캠은 달 표면의 음영을 조사해 물의 흔적을 찾을 수 있으며, 또 달 궤도 안착 시 1일 12번·1년 총 4380번 달 주위를 돌면서 유용한 정보를 NASA에 전송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