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도 그렇고 국회 예정처도 그렇고, 껌뻑하면 감사가 나옵니다.”
지난달 28일 서울 마포구 가든호텔에서 열린 국가신약개발사업단 회의에서 묵현상 단장이 연간 사업계획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한숨을 쉬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날 회의는 애초 올해 사업 기본 방향 계획을 발표하고 각계 의견 청취하는 취지에서 마련된 자리였는데, 한동안 묵 단장의 성토가 이어졌다.
묵 단장은 이날 정부 예산 일정에 맞춰, 사업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밝히면서 “쳐다보는 곳이 많아져서 세부 규정을 틀리지 않으려다 보니 이런 일이 생긴다”고 했다. 국가신약개발사업단은 연간 예산 300억원 규모의 범부처전주기신약개발사업에서 출발한 기관이다.
국내 대학·연구소 및 제약·바이오기업이 글로벌 시장 경쟁력을 갖춘 신약을 개발할 수 있게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대학원생은 물론, SK바이오팜, 한미약품 등 대형제약사들도 지원을 받고 있다.
신약 개발은 후보물질을 찾아서 효과성과 안전성을 확인하는 과정이 길기 때문에 자금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힘들다. 연구 수행 과정에서 자금이 부족해, 포기하는 일도 생긴다. 사업단은 이렇게 안타깝게 사업을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유망한 신약 개발 과제를 선정해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보건복지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3개 부처 공동으로 새롭게 출범했고, 예산 규모는 300억원에서 1500억원으로 5배 이상 커졌다. 지난해 사업단은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출시 목표 4건, 글로벌 라이센싱 아웃 목표 60건이라는 구체적 목표도 세웠다. 그런데 예산 규모가 커지면서 고민도 늘었다.
사업단은 그동안 1년에 4차례, 분기별로 신규과제 신청을 받았다. 신약 후보물질에 대한 연구가 언제 나올지 모른다는 특성에 따라서 필요한 시기에 지원을 하겠다는 목적에서다. 그런데 정부 예산 일정을 따르려다 보니 문제가 생겼다.
정부 정책 과제는 그해 받은 예산을 그해 쓰는 구조다. 문제는 4분기(11월)에 선정된 과제는 연구비 집행이 그해에 이뤄지지 않는다. 이월도 불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예산이 도리어 삭감되는 일이 발생했다. 그러자 사업단은 분기별로 과제를 선정하던 것을 연 1회만 받도록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예전에는 100개 과제를 분기별로 25개씩 선정했다면, 3월에 100개를 한꺼번에 뽑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날 참석자들은 반대 의견이 많았다. 박승국 한올바이오파마 대표는 “(바이오벤처들은) 신약을 개발할 때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할 때 중간에 (자금이 들어오지 않는) 갭이 생기는 것이 가장 고통스럽다”며 “신약개발지원단이 이런 문제를 중간에서 해결해 줬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범부처전주기사업때는 (분기별 과제 선정이)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왜 이런 문제가 생기는지 모르겠다”며 “(바이오 벤처) 기업은 어떻게 살아남는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걸 고려한다면 지금의 선정평가 체계는 유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연말에 과제를 선정해, 집행은 1월 1일에 할 수 있게 일정을 조율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하지만 묵 단장은 “올해 1월부터 예산을 집행하려고 11월 말 과제 공모를 냈더니 ‘2022년도 정부 예산이 국회를 통과하지 않았는데, 미리 공모를 내는 것은 국회의 예산 편성권에 대한 도전’이라는 반응이 나왔다”고 말했다.
묵 단장은 이어 “연간 예산이 300억에서 1500억원으로 커지면서 사업단을 보는 눈이 많아졌다”며 “지원 예산이 5배나 늘어나니 국회, 감사원까지 많은 관심을 주고 있어 규정에 하나라도 틀리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산 규모가 커지면서 눈치를 봐야 할 곳이 많이 늘어났다는 뜻이다.
사업단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는 참석자들도 불만을 얘기했다. 사업단이 지원을 받는 기업에 불필요한 서류 작업을 요구하고, 선정 과정에서도 전문성이 떨어져 보인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SK바이오팜 관계자는 “연구원은 실제로 신약을 연구해서 결과를 내야 하는데, 월별 평가를 받는데 할애하는 시간이 너무 많다고 한다”고 말했고, “지원을 받으려는 기업과 연구단체는 꼼꼼하게 자료를 내는데, 정작 공정한 평가가 되는지는 알 수가 없다”고도 말했다. 이 관계자는 “평가위원들이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평가를 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