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에서 가장 큰 장기는 무게 1.2~1.5㎏의 간(肝)이다. 이 커다란 장기에 염증이 발생하거나, 종양이 생기면 우리 몸에 필요한 필수 영양소를 만들어 저장하지 못하게 되고 몸에 해로운 물질을 해독하지 못해 생명을 위협받는다. 간 기능이 나빠지거나 거의 소실돼 약물치료나 간 절제만으로 치료가 어려울 경우, 최선의 선택지로 '간이식 수술'을 시행한다. 이식(移植)이란 말 그대로 '옮겨 심는다'는 뜻이다. 건강한 사람의 간 일부가 환자에게 이식되면 '새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서울아산병원은 간이식 수술 분야에서 세계 최고다. 서울아산병원 간이식 드림팀에서 20여년 이상 몸담으며 간이식 수술에 매진하는 인물이 있다. 서울아산병원 간이식·간담도외과 송기원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 16일 서울 송파구에 있는 서울아산병원에서 송기원 교수를 만났다. 송 교수는 "간이식 실패는 거의 없지만 수술 후 감염, 합병증, 이식 거부반응 등을 보이는 약 3~4%의 환자를 더 잘 치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간이식은 크게 뇌사자 간이식과 생체 간이식으로 나뉜다. 한국은 뇌사자 기증이 매우 적어, 건강한 사람의 간 일부를 기증하는 생체 간이식 수술이 발달했다. 생체 간이식은 기증자가 간 일부를 떼어낸 후 큰 합병증 없이 일상으로 복귀해야 하기 때문에 뇌사자 간이식보다 수술의 난이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 의학계는 간이식 분야 최고로 서울아산병원을 꼽는다. 서울아산병원은 치료가 어려운 중증 환자들을 제외시키지 않았음에도 간이식 환자의 1년 생존율이 98%에 달한다. 이는 장기이식 선진국인 미국의 89%를 훌쩍 뛰어넘는다. 지난해에는 첫 간이식 수술 28년 만에 7000번째 간이식 수술에 성공했다. 이는 국내 전체 간이식 수술의 약 45%를 차지하는 수치다. 2017년에는 생체 간이식 361건 중 수술 사망률 0% 기록도 세웠다.
이런 놀라운 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송기원 교수는 "살아 있는 간을 건강한 사람의 몸에서 떼어 내 다른 사람에게 옮기는 생체 간이식은 장기 기증자와 수혜자를 수술실에 동시에 눕혀 놓고 진행해야 하며, 수많은 혈관을 일일이 연결하는 매우 복잡한 수술이다"라면서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뿐 아니라 간호사 등의 수술 인력, 마취과 및 영상의학과 전문의 등이 한 팀이 돼 힘을 합쳐야 성공적인 수술을 이끌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간이식이 성공적으로 이뤄졌다고 하더라도 수술 이후의 합병증 관리를 신경 써야 한다"면서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24시간 의료진이 상주하면서 후속 치료까지 잘 이뤄질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 교수들은 주말에도 출근해 환자에게 맞는 최적의 치료를 논의한다.
미국 10대 병원으로 손꼽히는 스탠포드대학병원에서도 치료가 어려웠던 간경화 환자가 국내에서 생체 간이식 수술을 받고 두 달 동안의 치료 끝에 건강을 회복한 사례는 유명하다. 이 환자는 미국 스탠포드대학병원 의료진의 권유로 한국으로 와 수술을 받게 됐다. 실리콘밸리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던 찰스 칼슨(당시 47세)씨는 2018년 서울아산병원에 찾아와 진료받은 뒤 그해 12월 이 병원에서 간 이식 수술을 받았다. 당시 스탠포드대학병원에서 골수 이형성 증후군 항암치료를 10회 이상 진행했지만 간 기능이 악화돼 더는 치료를 진행할 수 없었다. 간 질환으로 항암 치료를 이어가지 못해 환자 상태는 갈수록 나빠졌다.
칼슨씨가 건강해질 수 있는 기회는 살아있는 사람의 간 일부를 기증받는 생체 간이식뿐이였다. 스탠포드대학병원 의료진은 환자에게 "생체 간이식은 미국보다 한국이 훨씬 앞서있다"며 서울아산병원을 추천했다. 간 이식 기증자는 그의 부인이다. 칼슨씨는 수술 후 간 기능이 회복돼 항암 치료를 다시 받을 수 있게 됐다. 당시 수술에 참여한 송기원 교수는 "환자를 의뢰받았을 때 간경화로 복수가 많이 차 있었고, 여러 차례 항암치료를 받아 많이 쇠약해져 결과를 장담할 수가 없었다"면서 "의료진을 믿고 치료 과정에 잘 따라준 환자와 가족 덕분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칼슨씨처럼 간이식 수술을 받기 위해 2010년을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서울아산병원을 찾아온 미국, 칠레, 러시아, 몽골, 중국, 싱가포르, 베트남, 아랍에미리트(UAE), 이스라엘 등 해외 환자 수만 112명에 달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전에는 해마다 40여개 나라에서 500여명의 해외 의학자가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의 수술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찾았다.
서울아산병원에서는 기증자 2명의 간 일부를 각각 기증받아 한 명의 수혜자에게 동시에 이식하는 2 대 1 생체 간이식 수술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1 대 1 생체 간이식에 비해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려운 수술이다. 전 세계에서 2 대 1 생체 간이식 수술의 95% 이상이 서울아산병원에서 이뤄지고 있다. 2 대 1 생체 간이식 수술은 2000년 간경화 말기로 1년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50대 가장이 서울아산병원에서 처음 수술을 받고 새 삶을 찾으면서 시작됐다. 한 사람의 간 기증으로 충분치 않거나, 남은 간의 용적으로 기증자 생명에 조금이라도 위험이 따를 수 있는 경우에 적용할 수 있는 수술로 서울아산병원 이승규 석좌교수가 세계 최초로 고안한 방법이다. 송 교수는 간이식 분야 석학인 이 교수의 제자이기도 하다. 그도 스승과 함께 2 대 1 생체 간이식 수술을 시행해왔다. 송 교수는 "건강한 사람의 간이 환자 간에 이식될 수 있는 조건에 부합한다고 하더라도 간의 좌·우엽 크기나 비율이 적절치 않으면 기증이 어렵다"면서 "이럴 때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의 간이 이식될 수 있게 만든 것이 바로 '2 대 1 생체 간이식' 수술"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고난도 수술을 위해서는 '기증자'의 안전을 해치지 않는 것이 최우선 고려 대상이며, 수혜자에게 줄 간 용적이 충분한지 살피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는 조건도 달았다.
1996년 서울아산병원에서는 혈액형이 일치하지 않는 '혈액 부적합 간 이식' 수술이 처음 시행됐다. 이식받는 환자와 기증자 혈액형이 같지 않아도 간이식 수술에서 혈액형은 더는 큰 걸림돌이 되지 않게 된 첫 시작이다. 송 교수는 2008년 11월 일본 교토대학병원을 단기 방문한 후 'ABO 혈액형 부적합 이식' 성인 생체 간이식을 성공적으로 국내에 정착시키고, 환자 생존률 95%(1년)라는 우수한 초기 성적을 거둠으로써 ABO혈액형부적합 성인 생체 간이식이 국내에서 활성화되는데 기여한 인물이기도 하다. ABO 혈액형 부적합 이식은 기증자와 수혜자 간 혈액형이 부적합한 경우에도 간이나 신장, 췌장 등의 장기를 주고받는 수술이다. 수술 전 혈액형이 맞지 않는 수혜자에게 혈장교환술, B세포제거 항체 주입 등의 방법을 통해 면역거부반응을 일으키는 항체를 제거하고 수술을 시행하는 고난이도 이식 방법이다. 송 교수는 ABO혈액형 부적합 성인 생체 간이식과 관련된 주제로 10여편의 논문을 국제 학술지에 게재하기도 했다. 2012년세계간이식학회(ILTS), 2014년 세계간담췌외과학회(IHPBA)에서 최우수 논문상을 받았고, 그 외에도 다수 국제학회에서 젊은 연구자상 및 우수 논문상을 받았다.
메디컬 드라마에 주로 등장하는 주인공은 외과의사다. 드라마 속 외과의사는 의사를 꿈꾸는 젊은이에게 환상을 심어 준다. 하지만 간이식 외과의사는 평균 14시간의 수술도 감당해야 한다. 그는 현실은 더 뜨겁고 치열하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그가 수많은 어려운 수술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한 사람을 살린다는 것은 굉장히 값진 일입니다." 송 교수는 자신의 의학 철학을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식환자의 경우 수술 과정과 그 이후에 천당과 지옥을 오갈 정도로 변화무쌍한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에 늘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고 했다. 송 교수는 "간이식 수술은 환자 가족의 삶까지 달린 수술이다"라며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하는 일은 긴장감을 잃거나 다른 이유로 쉽게 포기해선 안 되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