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4일(현지시각) 호르무즈 해협에서 선박 보호 작전 '프로젝트 프리덤(Project Freedom)'을 가동한 가운데, 과거 페르시아만에서 미군이 펼쳤던 또 다른 유조선 보호 작전들까지 소환되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 프리덤 작전은 40여년 전 당시 미국이 펼쳤던 호위 작전 어니스트 윌(Earnest Will)에서 뼈대를 가져 왔다. 동시에 그 무렵 행한 또 다른 비밀 작전 프라임 챈스(Prime Chance)까지 끼워 넣어 성공 확률을 높였다는 평가다.
5일(현지시각)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은 브리핑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시에 따라 미 중부사령부가 호르무즈 해협 상업 운항 재개를 위한 프로젝트 프리덤을 수행한다"며 이 작전이 이란전 본작전 '에픽 퓨리'와 별개인 "방어적 성격의 제한적·일시적 작전"이라고 규정했다.
댄 케인 미 합참의장은 같은 자리에서 "해협 남쪽에 강화된 보안구역(enhanced security area)을 만들었다"며 "미군 1만5000명 이상이 투입됐고, 전투기·공격기·드론 등 유·무인 항공자산 100대 이상이 24시간 방어 감시를 한다"고 설명했다. 미 국방부에 따르면 현재 호르무즈 해협을 빠져 나오지 못해 아라비아만 안에 묶여있는 상선은 1550척 이상, 갇힌 선원은 2만25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 군사 전문 매체들은 이번 작전이 외형적으로 1987년 어니스트 윌 작전과 유사하다고 평했다. 1987년 이란·이라크 전쟁 말기, 이란은 이라크를 돕던 쿠웨이트 선박을 공격했다. 쿠웨이트는 미국에 도움을 요청했다. 미국은 정치적 신호로 해협을 열기로 결정하고, 쿠웨이트 유조선 11척 선적(배 국적)을 미국으로 바꿔 달았다. 성조기를 단 배를 이란이 감히 때리지 못할 것이라는 발상이었다.
계산은 첫 항해에서 무너졌다. 1987년 7월 24일, 성조기로 바꿔 단 초대형 유조선 브리지턴호가 페르시아만에서 이란 기뢰에 피격을 당했다. 바로 옆에서 미 해군 군함이 호위를 하고 있었지만 소용없었다. 호위 선단을 이끌었던 헤럴드 번슨 당시 미 해군 중동 지역 지휘관은 "미국이 압도적 군사력을 가져도 이란이 우리를 공격할 의지가 분명하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했다.
미국은 그다음 작전 프라임 챈스를 비밀리에 시행했다. 미군은 해상 석유작업 바지선 두 척을 빌려 이동식 해상기지로 개조했다. 그 위에는 특수작전 항공연대의 야간 헬기, 네이비실, 폭발물처리반을 숨겼다. 결정적 장면은 1987년 9월에 나왔다. 숨어 있던 미군 작전 헬기는 이란 기뢰부설선 아즈르(Iran Ajr)호가 실제 기뢰를 깔고 있는 현장을 포착했다. 네이비실 병력은 순식 간에 기뢰를 깔던 배에 올라, 이란이 '우리가 한 게 아니다'라고 빠져나갈 공간을 차단했다. 군사 전문 싱크탱크 워싱턴인스티튜트는 이듬해 1988년 4월 USS 새뮤얼 B 로버츠 기뢰 피격에 대한 미국 측 보복 작전 '프레잉 맨티스(Praying Mantis)'까지 이어지면서 이란이 페르시아만 패권을 놓고 물러났다고 평가했다.
미국은 이번 프로젝트 프리덤 작전에서 항로 정찰·기뢰 대응·드론 감시·공중 엄호·해협 내 방어 회랑 설정을 한 묶음으로 굴린다. 과거 어니스트 윌 작전처럼 상선 옆에 구축함을 붙여 끌고 가는 형식 대신 케인 의장이 설명한 대로 강화된 보안구역을 설정했다. 미들이스트포럼은 최신 보고서에서 현대판 작전은 페르시아만 전체 500마일을 호위하는 게 아니라 "호르무즈 해협의 위협 집중 구간을 방어 회랑으로 만들어 40마일 질주(40-mile sprint)로 줄이는 개념"이라고 풀이했다. 항로 전체가 아니라, 선박이 두어 시간이면 지날 수 있는 좁은 공간만 안전하게 막겠다는 발상이다.
작전 성패 기준도 40년 전과 다르다. 전문가들은 1987년에는 유조선이 물리적으로 침몰하지 않게 안전 항행을 유도하는 것이 핵심이었다고 했다. 반면 지금은 유조선의 물리적 이동에 앞서 선사와 보험시장이 호르무즈 통항 위험을 감당할 수 있다고 기능적으로 판단하게 만드는 것이 관건이다. 미들이스트포럼은 보고서에서 "호르무즈 재개방은 기뢰 제거 문제도, 대함미사일 문제도 아닌 신뢰 문제"라고 정의했다. 이란은 해협을 완전히 봉쇄하지 않아도 상선 몇 척만 드론이나 미사일로 위협해 전쟁위험 보험을 끊기게 만들면 기능적으로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수 있다. 미국이 이번에 방어권역과 통항 회랑을 강조하는 것도 이 지점을 의식한 설계로 풀이된다.
다만 작전 규모가 40년 전보다 훨씬 커진만큼 군사적인 위험 부담도 많아졌다. 1987년 당시 미국은 이란·이라크 전쟁에 직접 참전하지 않았다. 국제적으로 이라크를 후방에서만 지원하는 중립적 호위국 입장을 고수했다. 현재 미국은 이미 이란과 군사 충돌을 거친 뒤 휴전 상태에서 작전에 들어간 상태다. 이란 역시 드론·대함 순항·탄도미사일·해안포 등 1980년대보다 훨씬 다양한 군사 무기를 보유했다. 워싱턴인스티튜트는 "어니스트 윌 당시 미국이 약 30척의 군함을 투입할 수 있었지만, 현재 미 해군 주요 수상 전투함은 약 100척 수준"이라며 "훨씬 큰 부담이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