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 규제당국이 월트디즈니 산하 방송국 전반에 대한 전면 조사에 착수했다. 유명 코미디언 지미 키멜이 트럼프 대통령 부부를 희화화한 신란한 농담이 발단이 됐다. 풍자라고는 해도 선을 넘은 발언이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한편 미디어를 둘러싼 정치권 압박이 한층 노골적이 됐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28일(현지 시각)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미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이날 디즈니가 보유한 ABC 지상파 방송국 전체를 대상으로 '불법적 차별 행위' 등 규정 위반 여부를 조사하라고 명령했다. FCC가 특정 대형 방송사의 면허 전반을 다시 들여다보는 것은 이례적인 조치다.
이번 조사는 ABC 간판 토크쇼 진행자 지미 키멜의 방송 발언에서 촉발됐다. 키멜은 지난 23일 방송에서 백악관 출입기자단 만찬을 패러디하며 멜라니아 여사를 두고 "멜라니아 여사, 남편이 죽기를 기다리는 과부처럼 들떠 보이네요(Mrs. Trump, you have a glow like an expectant widow)"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이틀 뒤 워싱턴 힐튼 호텔에서 실제 총격 사건이 발생하면서 논란이 더 커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멜라니아 여사는 즉각 반발했다. 멜라니아 여사는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키멜은 ABC가 보호해 줄 것을 알기에 방송사 뒤에 숨어 있다"면서 "이제는 ABC가 행동에 나서야 할 때"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트루스소셜을 통해 "키멜의 발언은 완전히 선을 넘었다"며 "디즈니와 ABC는 그를 즉각 해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티븐 청 백악관 대변인 역시 "용납할 수 없는 인물"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디즈니는 즉각 반박에 나섰다. 회사 측은 "ABC와 산하 방송국들은 FCC 규정을 충실히 준수해 왔으며, 지역사회에 신뢰할 수 있는 뉴스와 공익 프로그램을 제공해 왔다"고 밝혔다.
트럼프가 임명한 브렌던 카 FCC 위원장 체제 이후 방송 규제는 한층 강경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카 위원장은 '가짜 뉴스 미디어의 허상을 깨겠다'며 방송 면허 취소 가능성까지 언급해 왔다. 다만 실제 면허 취소까지는 장기간 법정 공방이 불가피해 현실화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직·전직 FCC 인사들은 이번 조치를 "전례 없는 압박"이라고 평가했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FCC를 이끌었던 톰 휠러 전 위원장은 "92년 역사상 이런 사례는 없었다"며 "방송사에 대한 노골적 위협"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소속 안나 고메즈 위원도 "불법적이며 실현 가능성도 없다"고 비판했다.
당초 2028~2031년 사이로 예정됐던 디즈니 방송 면허 갱신 시점도 앞당겨졌다. FCC는 해당 면허를 30일 내 재검토 대상으로 올리라고 지시했다.
키멜은 논란이 확산되자 "단순한 풍자였을 뿐 어떤 폭력도 부추기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기업들이 정치권 압박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준 사례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미디어 기업 파라마운트는 최근 트럼프를 비판해온 코미디언 스티븐 콜베어의 '더 레이트 쇼'를 폐지하기로 하면서 미디어 합병 승인을 앞두고 정부 눈치를 본 것 아니냐는 해석이 제기됐다.
디즈니 역시 지난해 키멜을 한 차례 하차시켰다가 시청자와 노조의 반발로 복귀시킨 바 있어 이번에는 어떤 선택을 내릴지 관심이 쏠린다. 이번 갈등은 지난 2월 취임한 디즈니의 새 최고경영자 조시 다마로에게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한편,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 반응이 '이중 기준'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자신을 수사했던 로버트 뮬러 전 특검의 사망에 대해 "그가 죽어서 기쁘다"고 언급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