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리조나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오른쪽) 지지를 선언하는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AFP=연합뉴스

미국 정치 명문가로 꼽히는 케네디 가문의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가 23일(현지시각) 오는 11월 미국 대선 도전을 포기하고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그의 큰 아버지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포함한 케네디 일가는 대대로 민주당 소속으로 정치 활동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그의 결정에 형제·자매들은 “아버지와 가족이 지켜온 가치를 배반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이날 AFP 통신에 따르면 케네디 주니어의 형제·자매인 캐슬린과 코트니, 케리, 크리스, 로리 케네디 등 5명은 공동 성명을 내고 “우리는 해리스와 월즈를 믿는다”면서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오늘 트럼프를 지지하기로 한 우리의 형제 보비(케네디 주니어의 별칭)의 결정은 우리 아버지와 가족이 가장 소중히 여겨온 가치를 배반한 일”이라면서 “이는 슬픈 이야기의 슬픈 결말”이라고 했다.

케네디 주니어는 지난 1963년 총격 피살된 존 F.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조카이자, 1968년 역시 총격으로 암살된 그의 동생 로버트 F.케네디 전 상원의원의 차남이다. 이번 대선에서는 지난해 10월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이날 선거운동 중단과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를 선언했다. 오랜 기간 백신과 예방접종 반대 운동을 전개하며 백신 의무화 정책을 나치 독일의 전체주의에 비유하기도 했다.

케네디 주니어의 가족들은 당초부터 그의 대선 출마를 반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4월 케네디 주니어가 대선 출마를 선언하자 가족 대부분은 이를 “의미 없는 일”이라며 선을 긋고, 재선에 도전한 민주당의 조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밝혀왔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후 바이든과 트럼프의 리턴 매치에 피로를 느끼는 유권자들의 표심을 흡수해 한때 10%가 넘는 지지율을 보이기도 했으나, 해리스와 트럼프의 대결로 대선 구도가 재편되면서 지지율이 5% 안팎까지 하락했다. 또 과거 뇌 기생충 진단을 받았으며 심각한 기억 상실에 시달린 적이 있다는 보도가 나온데 이어 최근에는 뉴욕주 후보 등록이 ‘허위 주소 사용’ 문제로 무효로 되는 등 각종 논란에 휩싸였다.

케네디는 자신이 트럼프 전 대통령과 그 참모들을 여러 차례 만났고, 자신과 트럼프가 불법이민 문제, 표현의 자유, 전쟁 종식 등 주요 현안에서 뜻을 같이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다만 케네디는 선거운동을 접을 뿐이며, 후보 등록 자체를 전면 철회하는 것은 아니라면서 대선 승패를 좌우할 격전지 10개주의 투표용지에서 자신의 이름이 삭제되도록 할 것이나, 그외 다른 주에서는 후보 자격을 유지할 것이라고 했다. 이번 대선에서 유의미한 지지도가 나온다면 이를 정치적 자본으로 삼아 대선 이후 독자 정당 창당 등을 모색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대선 경합주인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유세 도중 “우리는 막 케네디 주니어로부터 매우 멋진(nice) 지지를 받았다”며 케네디에게 “감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해리스 부통령의 지지세가 박빙을 보이는 가운데, 케네디 주니어의 이날 트럼프 지지 선언이 판세를 뒤흔들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