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최고 가격제 시행에 따른 손실 보전 기준을 두고 정부와 협상을 해 온 정유업계가 정부 제시안인 원가 기반 손실 보전 산정 방식을 수용하는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유가가 급등하자, 지난 3월 13일부터 석유 최고 가격제를 시행하고 유가 상승분을 반영하지 못해 발생하는 정유사의 손실을 사후에 보전해 주기로 약속한 바 있다.

15일 정부와 정유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부는 이달 안에 석유 최고 가격제 관련 손실 보전 정산 기준을 고시하고 최고액 정산위원회를 구성할 예정이다. SK이노베이션·GS칼텍스·HD현대오일뱅크·에쓰오일 등 정유 4사는 산업부와 원유 도입가, 생산 비용 등을 두고 협의를 진행 중이다.

서울 서초구 만남의광장 주유소의 모습. /뉴스1

정부는 재정 지원의 원칙상 원가를 기반으로 손실액을 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유업계는 정부안에 대해 공정 특성상 휘발유·경유·등유 등을 동시에 생산하기 때문에 특정 유종의 원가만 별도로 산정하기가 어렵고, 원가는 대외비에 해당된다는 이유 등을 들어 반발해왔다.

정유사들은 싱가포르 국제 석유제품 가격(MOPS)을 기준으로 두고, 석유 최고 가격제에 따른 차액(기회 손실)을 반영해 줄 것을 요구했었다. 석유 최고 가격제와 정부의 수출 통제로 이익을 제대로 얻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정유업계는 이 같은 기회 비용이 3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최근 정유업계가 정부안을 수용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꾼 것은 정부와 계속 대립각을 세우는 게 손실 산정 협상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최근 검찰 등 사정 당국이 정유 4사를 대상으로 담합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데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정유사·주유소 간 불공정 관행 개선 논의가 나오는 점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풀이된다.

정유사들이 유가 상승으로 올 들어 실적이 크게 개선된 점도 정부안 수용으로 무게가 쏠린 이유로 꼽힌다. 올해 1분기 정유 4사의 합산 영업이익은 5조9635억원에 이른다. 2분기에도 이익 증가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일부 정유사들은 유가 하락기에 나타나는 재고자산 평가 손실에 대해 보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정부에 낸 것으로 알려졌다. 유가가 하락하면 비싸게 사둔 원유의 평가 손실로 이어져 정유사들의 장부상 이익이 줄어든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협상 초기에는 손실 산정 기준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현실적으로 정부가 업계의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이 작고 논의 기간만 늘어질 것이라 판단했다"며 "차라리 일찍 기준을 확정해 불확실성을 줄이는 게 유리하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전날 국제 유가가 배럴당 90달러 아래로 내려갈 경우 석유 최고 가격제 해제를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