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사태로 벌어진 석유화학 제품 수급난에 정부와 업계가 적극 대응하면서 국내 석유화학 업계는 한숨 돌린 분위기다. 이달 초까지만 해도 석유화학 원료를 구하지 못해 공장 가동 중단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긴 것이다. 다만 길어도 상반기까지 대응책에 불과한 데다 핵심 원료인 나프타 가격과 해상 운임이 급등해 수익성이 떨어지는 점은 우려 요소다.
24일 석유화학 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주요 석유화학 기업들의 나프타분해설비(NCC) 가동률은 60~70%대로 파악된다. 중동 사태 전 70~80%대였던 것과 비교하면 10%포인트(P) 정도 떨어졌다. NCC는 나프타를 고온에서 분해해 석유화학의 기초 원료인 에틸렌, 프로필렌, 부타디엔 등을 생산하는 설비를 말한다.
지난달 핵심 원료인 나프타를 구하지 못해 여천NCC를 시작으로 이달 한화토탈까지 고객사에 공급 불가항력(Force Majeure)을 선언할 정도로 위급했는데, 이런 상황에선 벗어났다고 업계에선 평가한다. 불가항력이란 전쟁·천재지변 등 당사자가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사태로 계약 이행이 불가능해진 경우, 공급자가 불이행에 따른 배상 책임을 면제받을 수 있는 조항이다.
회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업체는 가동률을 60~70%대로 조정할 경우 상반기까지는 버틸 재고를 확보한 것으로 파악됐다. LG화학이 여수 2공장 가동을 중단했고, 롯데케미칼이 정기보수 일정을 앞당기는 등 업계 스스로 감산 체제로 대응한 것이 우선 도움이 됐다. NCC는 한번 가동을 중단하면 다시 가동하는 데 일주일가량 걸리고, 상당한 손해가 발생한다.
여기에 정부와 기업이 힘을 합쳐 백방으로 원유, 나프타를 구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지난 14일 정부는 올해 말까지 사우디아라비아·오만·카자흐스탄·카타르 4개국에서 원유 2억7300만배럴과 나프타 210만톤(t)을 도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인도산 나프타가 더 들어올 가능성도 있다. 지난 20일부터 인도를 국빈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만나 안정적인 나프타 수급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한국은 지난해 221만4000t의 나프타를 인도로부터 수입했다.
기업들도 자체적으로 비중동산 나프타를 확보하기 위해 공을 들였다. 그간 한국은 나프타 수요의 약 45%를 수입했고, 이 중 77%가 중동산이었다. 최근 동남아, 미국, 아프리카 지역으로 조달 경로를 넓히고 있다.
문제는 비용이다. 산업통상부 통계 정보에 따르면 지난 20일 기준 나프타 가격은 톤당 971달러로, 연초 대비 80% 뛰었다. 기업들이 구하는 스팟(단기) 물량 가격은 더 비싸다고 한다. 중동 사태 이후 해상 운송비용도 급등했다. 기업 입장에선 운송 거리가 먼 아프리카, 미국보단 동남아 지역에서 원료를 들여오는 게 그나마 낫다.
석유화학 업계에선 당장 수급 불안은 해소했으나, '버티기 모드' 상황인 만큼 안심할 단계는 아니라고 걱정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비싼 나프타를 무작정 사기엔 수익성이 문제"라며 "여러 물건을 알아보고 버티고 있으나,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진 의문"이라고 말했다.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의 올해 상반기 실적은 부진할 전망이다. LG화학의 1분기 영업손실 컨센서스(증권가 추정치)는 1671억원, 롯데케미칼은 1473억원으로 집계됐다. 중동 전쟁 영향이 반영되는 2분기 실적은 더 부진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