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우리나라 철강산업이 바닥을 다지고 반등할 것이라는 기대가 흔들리고 있다. 중국의 철강 재고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밀어내기 수출'이 재현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미국·유럽연합(EU), 남미 등의 관세 부과와 더불어 내수 침체가 심화된 여파로 풀이된다.

9일 중국철강협회(CISA)와 철강전문 외신 등에 따르면 지난달 20일 기준 중국의 5대 철강재(열연, 냉연, 후판, 선재, 철근) 재고는 953만톤(t)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10일(781만톤) 대비 22% 급증한 규모다.

중국 랴오닝성 다롄의 한 창고에서 직원이 철강 선재 제품을 점검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중국철강협회 회원사인 대형 철강업체들이 보유 중인 완제품 재고도 1511만톤 수준이다. 현지에서는 재고 규모가 과도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중국 내 철강 재고가 쌓이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인한 내수 부진이다. 재고 중 철근이 약 414만톤으로 전체의 43%를 차지한다. 열흘간 재고 증가율은 27.5%로, 5대 철강재 중 가장 컸다.

중국 정부는 지난 30년간 부동산 개발, 인프라 투자를 고성장을 위한 발판으로 삼았다. 그 결과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25%를 건설 부동산이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3~4년 전부터 비구이위안, 완다 등 부동산 기업들이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졌고, 최대 건설기업인 완커도 유동성 위기를 맞았다. 중국 내 미분양과 공실 주택은 약 8000만 가구로 추산된다.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올해 중국 내 신규 주택 판매량이 지난해보다 최대 14% 줄어들 것"이라면서 "중국 정부의 각종 부양책에도 공급 과잉과 수요 침체가 맞물리며 시장 회복이 늦어지고 있다"고 했다.

중국을 겨냥한 글로벌 관세의 여파도 재고 급증의 원인이다. 미국은 중국산 철강에 대해 평균 24~37%의 실질 관세를 유지하고 있다. 유럽은 올해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본격적으로 시행해 중국산 철강 대부분에는 '탄소 비용'이 부과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중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23년 기준 1만1310메가톤(Mt)으로, 세계 1위다.

브라질과 칠레 등 남미 국가들도 중국산 저가 철강 유입을 막기 위해 올해 초부터 25% 수준의 긴급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중국 정부는 철강업계에 감산 조치를 내렸지만, 통하지 않고 있다. 아직 전기로로 대체하지 못한 철강업체들이 전체의 80%로, 생산 중단에 상당한 비용이 따르기 때문이다. 또 지방 정부는 세수 유지를 위해 철강 업체에 우회적으로 생산 유지를 압박하거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에 중국철강협회의 한 임원은 공개석상에서 "지방정부가 GDP와 세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부실 철강사의 가동 중단을 방해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국내 철강업계에서는 3~4월 중 중국의 '밀어내기 수출'이 늘어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로 인해 올해 실적 반등을 기대했던 철강업계에 부정적인 여파를 미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세계철강협회는 올해 글로벌 철강 수요가 1.3~1.8%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국내 양대 철강사인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사업 다변화와 첨단화로 활로를 찾고 있다. 포스코는 철강 수출을 확대와하고 동시에 리튬 소재 공급망을 늘릴 방침이다. 현대제철은 탄소배출을 20% 이상 줄인 저탄소 강판을 양산해 현대차·기아 전기차에 우선 공급하기로 했다.

한 대형 철강업체 관계자는 "후판, 열연의 경우 무역구제조치로 중국산 유입이 제한적일 것"이라면서도 "다만 그 외 제품의 불공정 수입이 확대될 경우 국내 수급 안정화에 방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