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제조업 기술을 기반으로 유럽의 강자로 군림하던 독일이 최근 몇 년 새 높은 에너지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유럽의 병자’로 전락했다. 인공지능(AI) 패권을 노리는 미국은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에너지 확보에 사활을 걸었다. 첨단 기술이 발전하면서 에너지가 국운을 좌우하는 시대가 됐다. 독일과 미국의 사례를 통해 대한민국 에너지 정책의 현재와 미래를 살펴본다.[편집자주]

지난달 23일(현지시각) 진행된 독일 연방의회 총선에서 프리드리히 메르츠가 이끄는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이 올라프 숄츠 총리가 이끄는 사회민주당(SPD)을 제치고 정권 교체를 이뤘다. 유권자 5명 중 4명이 투표장으로 향했을 만큼 독일 통일 이후 가장 높은 투표율을 기록한 이번 총선은 에너지 주권 확보에 실패한 과거 정권에 대한 ‘심판 투표’ 성격이 강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총선에서 승리한 CDU의 대표이자 차기 독일 총리로 유력한 메르츠는 취임 이후 독일의 에너지 위기 정상화에 주력할 것으로 관측된다. 그는 예전부터 탈원전 정책을 비판해 왔고, 취임 이후 50개의 화력발전소를 건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독일 총선의 1차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된 지난달 23일(현지시각) 베를린에서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기독민주당(CDU) 대표가 지지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 AFP 연합뉴스
독일 총선의 1차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된 지난달 23일(현지시각) 베를린에서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기독민주당(CDU) 대표가 지지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 AFP 연합뉴스

메르츠는 독일 본 대학교와 마르부르크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한 법률가 출신으로, 1989년 34세의 나이에 유럽의회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1994년 연방 하원의원으로 선출됐고 2000년 CDU·CSU 연합의 원내대표를 맡으며 정계의 중심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2002년 총선 이후 앙겔라 메르켈에 원내대표 직위를 내줬고 2009년 총선 출마를 포기하며 정계에서 물러났다.

메르츠는 정치권에서 나온 뒤 법률가와 로비스트로 활동했다. 글로벌 로펌인 마이어브라운에서 기업 관련 법률 실무를 맡았고, 전 세계 최대 규모의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독일 법인 이사회 의장도 지내며 글로벌 경제의 흐름을 익혔다. 이 과정에서 두 개의 전용기를 마련할 정도로 막대한 부도 쌓았다.

메르츠는 2018년 메르켈이 총리 연임을 포기하고 CDU 대표에서도 물러나자, 당 지도부 선거에 출마해 정계 복귀를 선언했다. 이후 메르츠가 속한 CDU와 CSU는 이번 총선에서 각각 22.6%, 6%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제1당이 됐다. 극우 독일대안당(AfD)이 득표율 20.8%로 뒤를 이었고, 기존 숄츠 총리가 이끌던 집권당 SPD는 16.4%를 기록해 제3당으로 떨어졌다. 메르츠가 경제 위기 상황에 부닥친 이번 독일 총선에서 승리한 것은 과거 경력을 통해 쌓아온 ‘경제 전문가’ 이미지가 주요했다는 평가다.

과거 당에서 메르츠를 밀어내고 독일의 총리가 된 메르켈은 2011년 강화된 탈원전 정책을 시행했고 2022년까지 원전 가동을 완전히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목표는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으로 1년 늦춰졌지만, 2023년 후임 올라프 숄츠 총리 체제에서 결국 달성됐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기독민주당(CDU) 대표가 8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의회에서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EPA 연합뉴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기독민주당(CDU) 대표가 8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의회에서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EPA 연합뉴스

정치권 바깥에서도 메르켈의 탈원전 구상과 숄츠의 탈원전 이행을 꾸준히 비판해 왔던 그는 올해 총선을 앞두고도 탈원전을 재검토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또 메르츠가 속한 CDU·CSU의 의원들은 지난해 하반기 폐쇄된 원전을 재가동할 수 있는지에 대한 평가를 촉구한 바 있다.

이들은 별도의 보고서를 통해 “올라프 숄츠 총리의 탈원전 정책은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잘못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도 지난해 “독일이 원자력발전으로 복귀하는 것은 합리적”이라고 언급했다.

에너지 정책에 실패한 독일은 화석연료 기반 발전 확대도 예고하고 있다. 메르츠는 지난 1월 선거 운동 과정에서 “내달 조기 총선에서 승리할 경우 가능한 한 빨리 독일에 가스 화력발전소 50개를 건설하겠다”며 “전임 숄츠 정부가 마지막 원전까지 폐쇄한 것은 심각한 전략적 실수”라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독일 총선 이후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독일 국민들은 수년 동안 지속된 상식 없는 의제, 특히 에너지와 이민 문제에 지쳤다. 모두에게 축하를 전하며 앞으로 더 많은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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