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의 신규 선박 수주 비율이 20%를 밑돌 것으로 전망된다. 조선업계가 극심한 불황을 겪은 2016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그러나 한국 조선사가 고부가가치 선박인 액화천연가스(LNG·Liquefied Natural Gas) 운반선 등에서 축적한 경쟁 우위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국내 조선업계는 스마트·친환경 선박 기술 개발에 투자하며 중국의 물량 공세를 견제할 것으로 관측된다.
20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네덜란드 금융기업 ING 산하 경제연구소 ING싱크는 지난 16일 발간한 ‘아시아 조선업 르네상스’ 보고서에서 전 세계 조선업 시장에서 한국 점유율이 지난 4년간 하락했지만 한국 조선사의 효율성과 경쟁력은 더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특히 한국 조선사들이 주로 수주하는 고부가가치 선박인 LNG·LPG(Liquefied Petroleum Gas) 운반선에선 경쟁자가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조선사는 올해 1~11월 전 세계에서 발주된 신규 선박 6033만CGT(Compensated Gross Tonnage·선박의 부가가치, 작업 난이도 등을 고려한 무게 단위) 중 1092만CGT를 수주했다. 척 수로는 2159척 중 248척이다. 한국 점유율은 18%로 2016년(15.5%) 이후 최저치다. 한국은 연간으로도 신규 선박 점유율이 20% 아래로 내려갈 것이 유력한 상황이다.
중국은 자국 발주 물량 덕에 점유율(1~11월)을 69%로 높였다. 중국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발(發) 조선업 불황 때 구조조정을 거쳐 건조가 쉬운 컨테이너선, 벌크선 수주를 저가에 싹쓸이하며 2012년부터 전 세계 신규 수주 1위를 지키고 있다. 최근 몇 년간은 한국 조선사들이 선점한 LNG선 시장에서도 수주를 늘리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중국은 인력, 원자재 등 가격면에서 절대적인 경쟁 우위를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체 생산비용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인건비가 한국이나 일본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중국 정부의 자금 지원도 넉넉하다.
ING는 한·중·일 3국 중 한국이 야드(선박 건조장)당 선박 건조 활용률이 가장 높다고 분석했다. 야드당 수주 수(척 기준) 비율은 한국 70.9, 중국 21.3, 일본 13.3 순이다. ING는 “한국 조선사들은 수익성이 높고 신뢰도 높은 주문들로 야드를 채우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 조선사가 수주한 물량의 상당 부분은 수출용이지만 중국이 수주한 선박은 대부분 중국 선주가 발주한 것이다. 국가 전체 수출에서 선박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한국이 중국·일본보다 높다. ING는 “올해 조선업이 한국 수출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현재 수주잔고(백로그)가 3.5년임을 감안하면 최소 3년간은 선박 수출이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조선업계에서는 중국이 LNG 운반선 수주를 확대하며 한국을 추격하고 있지만, 한국의 기술력 수준을 따라오려면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본다. 중국은 2022년 한국 업체들이 소화하지 못한 LNG선을 수주했는데, 이를 내년부터 인도한다. 실제 운항에 들어가면 중국의 기술력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암모니아 운반선이나 이산화탄소 운반선 등 신종 선박과 완전자율운항 선박 기술, 무탄소 엔진 등 개발에 속도를 내며 기술 격차를 유지할 계획이다.
수익성이 좋은 선박을 골라서 수주하는 한국 조선사가 중국 조선소에 외주를 주는 사례도 등장했다. 삼성중공업(010140)은 10월 말 아프리카 선주로부터 수주한 4593억원 규모 유조선 4척의 건조를 중국 조선소에 맡겼다. 삼성중공업이 설계와 주요 기자재 구매조달을 담당하고 중국 조선소 시설과 인력을 사용해 중국에서 생산하는 방식이다. 삼성중공업은 현재 수주잔고 중 약 65%인 79척이 LNG·LPG 등 가스선으로, 고가 선종 위주로 먹거리를 채워놓은 상태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선주가 중국 외주 생산을 감수하면서 우리에게 발주했다는 것은 삼성중공업의 품질 보증을 믿고 맡겼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 출범도 한국 조선업엔 기회로 꼽힌다. 트럼프 당선인은 모든 분야에서 관세 장벽을 올리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지만 조선·해양방산 분야만큼은 한국에 도움을 요청했다. 한화오션(042660)이 미 해군 함정 유지·보수·정비(MRO·Maintenance, Repair, Overhaul) 사업을 따낸 것을 시작으로 HD현대(267250) 등 한국 조선사들이 미 군함 건조 시장까지 진출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조선업이 무너진 미국은 중국 해양 패권을 억누르려면 파트너가 필요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