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박빙 승부로 평가되는 미국 대선이 약 보름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최근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을 점치는 조사 결과가 잇달아 발표되고 있다. 국내 산업계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 보조금 혜택이 줄고 대한(對韓) 관세정책이 강화돼 기업 환경이 전반적으로 악화할 것을 우려한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2일(현지시간) 미국 대선 결과 예측 모델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확률이 54%라고 밝혔다. 미 정치전문매체 ‘더 힐’과 선거 전문 사이트 디시전데스크HQ(DDHQ)의 대선 결과 전망에서도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확률은 52%였다. 의회 상원 선거에서도 공화당이 민주당을 앞지를 가능성이 크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의회에서도 트럼프 전 대통령을 제어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배터리, 에너지, 자동차 산업은 인플레이션방지법(IRA)이 축소될 것을 걱정한다. 미국에서 생산한 전기차·배터리·태양광에 보조금을 주는 IRA는 친환경 정책을 추진한 바이든 정부의 상징과 같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집권하면 에너지 정책을 대대적으로 수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은 ‘미국 대선 시나리오별 한국 산업 영향과 대응방향’ 보고서를 통해 IRA가 폐지되거나 행정지도 등으로 지원 규모가 축소되면 배터리 수요 둔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봤다. 또 국내외 전기차 생산설비에 대한 투자 조정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다. 현대차(005380)·기아(000270), LG에너지솔루션(373220)·SK온·삼성SDI(006400) 등은 미국에 막대한 규모로 투자했거나 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한국 기업의 공장이 공화당 우세 지역에 있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집권해도 IRA를 대대적으로 수정하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또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가 트럼프 전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어 전기차 관련 혜택을 크게 손대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국내 산업계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주장한 ‘보편적 관세’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모든 수입품에 현재 평균 3%대인 관세를 최대 20%로 상향하고, 중국산 수입품에는 60%, 멕시코 생산 중국 자동차에는 최대 1000% 관세를 물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보편적 관세가 적용되면 한국의 철강업계가 받을 타격이 크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미국으로 수입되는 철강 및 알루미늄에 각각 25%, 10%의 관세를 부과한 바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쿼터(할당량) 부과국으로 연간 263만톤(t)까지는 미국에 수출해도 관세를 내지 않지만, 이를 초과하면 관세가 붙는다. 트럼프 2기가 시작되면 쿼터가 축소되거나 관세 대상으로 분류될 수 있다.
미국은 중국산 철강 제품이 우회 수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 중인데, 이 과정에서 한국 철강 제품에 대한 규제가 덩달아 강화될 수 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미국이 중국산 철강제에 대한 관세를 높이면서 제품 조사 대상을 넓혀 우리나라가 중국의 우회 수출 경유지로 지목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뿐 아니라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 역시 ‘미국 우선주의’ 기조를 보여 미국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불확실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조성대 한국무역협회 통상연구실장은 “방법론의 차이는 있지만, 민주당 역시 자국 중심주의로 기울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이 거세지면서 우리 기업이 대응해야 할 불확실성이 커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