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010130)의 경영권 분쟁이 치킨게임(양쪽이 양보하지 않고 출혈경쟁을 벌이는 상황) 양상으로 번지면서 경영권을 지키려는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과 경영권을 뺏으려는 영풍·MBK파트너스의 부담이 계속 커지고 있다. 양측은 고려아연 지분 공개매수 가격을 번갈아 가면서 올리고 있는데, 지금은 주당 공개매수 가격이 83만원으로 동일하다.

8일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이번 주 안에 자사주 공개매수 가격을 추가로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영풍·MBK 연합은 고려아연 지분을 최대 14.61%, 고려아연은 최대 18%를 공개매수할 계획이다. 양 측 모두 최소 매수 조건이 없어 공개매수 신청 물량이 최대 물량에 미달하면 전량을 매수한다.

그래픽=손민균

영풍·MBK 연합은 지난달 13일 고려아연 공개매수 가격을 66만원으로 제시했다. 이후 주가가 오르자 영풍·MBK 연합은 공개매수 가격을 75만원으로 상향 조정했고, 고려아연은 이달 2일 83만원에 공개매수 하겠다고 제시했다. 영풍·MBK 연합은 이틀 뒤 공개매수 가격을 83만원으로 똑같이 올렸다.

MBK는 막대한 자금력을 동원해 고려아연 경영권을 인수하더라도 나중에 되팔아 투자금을 회수해야 해 무작정 높은 가격에 살 수가 없는 상황이다. 통상 사모펀드 운용사가 투자자(LP)를 모집할 때 보장하는 내부수익률(IRR) 기준은 8%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MBK는 고려아연 경영권을 인수해도 향후 10년간 팔지 않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MBK는 영풍으로부터 지분을 매수할 권리가 있는데, 매수 가격은 알려지지 않았다. MBK가 영풍으로부터 싼 값에 고려아연 지분을 인수하더라도 공개매수 가격이 높아지면 나중에 비싸게 팔아야 해 부담이 커지게 된다.

지난달 고려아연 공개매수를 개시할 당시 MBK가 투입하겠다고 밝힌 자금은 약 2조원이었지만, 현재는 2조5000억원을 웃돈다. 여기에 영풍정밀(036560) 지분 인수, 장형진 영풍 고문 등 장씨 가문이 소유한 지분 취득을 위한 자금 등을 포함하면 4조원에 가까운 금액을 투입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한 증권가 관계자는 “평소 고려아연 주가가 50만원대에서 오르내렸다는 점을 고려하면 (공개매수) 가격이 이미 과열돼 있다”며 “10년 뒤를 보더라도 이자 부담이나 시장, 사업 변수를 상쇄하고 목표 수익을 달성할 수준으로 기업가치를 키울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2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에서 열린 영풍과 MBK와의 경영권 분쟁 관련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던 중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뉴스1

고려아연도 부담이 있는 건 마찬가지다. 베인캐피탈 지원, 외부 금융기관 대출, 자기자금 등을 활용해 공개매수 자금을 마련했지만, 차입금 의존도가 높아 장기적으로 회사 재무구조가 악화하고 투자여력이 축소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려아연은 전날 자사주 공개매수에 투입한다고 밝힌 자기자금 1조5000억원 중 1조원은 차입금이라고 정정했다. 기존에는 공개매수를 위해 마련한 자금을 자기자금 1조5000억원, 차입금 1조1635억원으로 신고했지만 사실상 전체 3조1000억원(베인캐피탈 4300억원 포함)중 자기자금은 16.1%에 불과한 셈이다.

일각에선 고려아연이 차입금으로 부담해야 할 이자만 연간 약 1800억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회사 부채비율이 증가해 기존에 예정된 자금 조달이나 신사업 투자 여력도 그만큼 줄어들 것이라는 지적이다. 고려아연은 지난해부터 오는 2033년까지 10년간 기존 제련 사업과 신사업에 총 16조70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재계에선 고려아연이 공개매수 가격을 조정한다면 그 날짜가 11일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영풍·MBK 연합이 14일까지 고려아연, 영풍정밀 지분 공개매수를 진행하는 만큼 11일까지 가격을 상향해야 투자자를 끌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11일까지 가격을 조정하지 않으면 고려아연의 공개매수 종료일(23일)은 영풍·MBK보다 늦어지게 돼 같은 조건이라면 투자자가 영풍·MBK를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