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액화천연가스(LNG) 화물창(KC-1)을 채택한 SK해운 소속 대형선 2척이 단 한 번도 상업 운전을 하지 못하고 결국 폐선 절차에 들어섰다. 사업을 졸속으로 추진한 결과 국내 조선업계와 해운업계가 막대한 자원과 시간을 낭비하고 한국 기술에 대한 해외 선주들의 불신을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SK해운의 17만4000㎥급 LNG운반선 SK세레니티와 SK스피카는 최근 말레이시아 사바(Sabah)주의 연방직할령 라부안(Labuan)에 도착해 장기 계선(선박이 운항을 중지하고 정박하거나 계류하는 것) 절차를 진행 중이다.
말레이시아 라부안은 선박의 계선지로 유명하다. 해운 경기가 나빠지면 이 곳의 앞바다에 대형 선박들이 늘어난다. 선주들이 일감을 찾지 못한 배들을 낮은 비용으로 관리하다가 중고로 팔기 위해 이곳으로 보내기 때문이다. 이렇게 팔린 배 중 상당수는 방글라데시나 인도 등의 폐선 야드로 보내져 해체된 뒤 고철로 팔려나간다.
대형선의 경우 한국 거제시 지세포항 같은 계류지의 하루 유지 비용으로 라부안에서는 약 1개월을 유지할 수 있다. 배에서 선원을 전원 하선시켜 급여·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고, 전력 계통을 차단해 연료유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상태로 만들기 때문이다.
해운업계에서는 SK해운의 한국형 화물창 적용 LNG운반선들이 결국 폐선 수순을 밟을 것으로 전망한다. 설계 결함으로 보냉 기능에 이상이 생겨 이들 배를 받아주는 항구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주요 가스 수출국인 호주에서는 관련 문제를 해결하기 전까지 SK세레니티·SK스피카의 입항을 거절하겠다고 밝혔다. 중동 국가들은 입항 문의에 아예 답변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SK세레니티·SK스피카를 건조한 삼성중공업(010140)은 이달 초 두 배의 화물창 결함에 따른 선박 가치하락분 3900억원을 선주사인 SK해운에 지급했다. 이에 따라 이후 해당 선박에서 발생하는 모든 비용은 선주사가 부담해야 한다. 선박 하루 유지비는 척당 2만달러(약 2760만원) 수준이다.
해운업계는 관련 행정 처리에 필요한 약 3개월 후 SK해운이 해당 선박을 팔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한국형 화물창 적용 선박은 폐선 등 중고선 거래를 위해 산업통상자원부의 수출 허가가 필요하다. 한국형 화물창이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됐기 때문이다.
앞서 가스공사는 지난 2014년 한국형 화물창 KC-1 기술을 적용한 17만4000㎥급 LNG운반선 2척을 건조한 선사에게 미국 멕시코만 연안의 루이지애나주(州) 사빈패스(Sabine Pass) LNG 프로젝트의 화물을 위탁하는 사업을 발주했다. SK해운이 사업자로 선정돼 KC-1 기술을 적용한 SK세레니티, SK스피카 등 2척의 LNG선을 건조했다. 시험 운항 중 보냉 기능에 이상이 확인되면서 이들 선박은 네 차례 수리를 받았다. 그러나 두 배는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상업 운전을 하지 못했고, 수리비와 미운항 손실이 발생했다. 이에 따라 관계사들은 긴 법적 다툼에 돌입했다.
지난해 10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KC-1 기술 개발사인 가스공사에 전적인 책임을 물어 삼성중공업에 수리비 726억원을 지급하고, 선주사인 SK해운에는 선박 미 운항 손실 전액인 1154억원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같은 해 12월 영국의 중재법원은 KC-1 하자로 인한 선박의 가치하락을 인정하면서, 선박 제조사인 삼성중공업이 SK해운에 390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삼성중공업은 SK해운이 요청한 중재 판결금 약 3900억원을 이달 초에 먼저 지급했고, 이 금액을 가스공사에 구상금으로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