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토로라, 제일기획(030000)에서 10년 넘게 일하다 2016년 유·아동 돌봄 스타트업 ‘자란다’를 창업해 이끄는 장서정 대표는 최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으로 전격 발탁돼 화제가 됐다. 자란다는 2000만원의 초기 투자금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누적 447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며 ‘유·아동 돌봄 공백’을 메울 플랫폼으로 주목받고 있다. 장 대표는 일하면서 두 아이를 키운 워킹맘이기도 하다. 그는 제22대 총선 공약개발본부에 참여하며 국민의힘 ‘총선 1호 공약’으로 발표된 저출생 문제 해결과 일·가정 양립을 위한 세부 대책을 만드는 데 기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3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자란다 본사에서 만난 장 대표는 “나를 그대로 지키면서도 스마트하게 아이를 키우고 싶은 부모에 대한 정치권의 충분한 공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바탕으로 금전적 지원을 넘어 일할 수 있는 시스템·문화를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퍼주기식 정책이 아니라 엄마·아빠가 계속 일할 수 있도록 기업을 위한 정책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은 장 대표와의 일문일답.

장서정 대표는 "엄마, 아빠가 일할 수 있는 시스템, 문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남강호 기자

─대기업 다닐 땐 아이를 어떻게 키웠나.

“직장맘(직장에 다니는 엄마)들이 그렇듯 살림은 이모님(가사도우미) 도움을 받고, 교육은 (방과 후부터 퇴근 전까지) 방문 학습지, 태권도, 미술로 ‘학원 뺑뺑이’를 돌리며 버텼다. 사용자경험·인터페이스(UX·UI) 디자이너로 모토로라에서 근무하다 제일기획으로 이직하면서는 정말 힘들었다. 일 욕심도 많았지만, 사업 전략 수립이란 완전히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되면서 역량을 벗어나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새벽 4~5시에 퇴근하는 일도 많았다.

마침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에 들어갈 때였다. 유치원 땐 뺑뺑이로 버텼지만, 초등학생이 되니 상황이 달라졌다. 아이가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할 수 있도록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꼈다. 육아휴직을 했다가 아예 그만두고 유연하다는 작은 스타트업으로 이직했지만 눈치 보이는 건 비슷했다. 오래 버티지 못했다. 그해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소위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가 됐다.”

─자란다를 창업했는데.

“재취업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이는 엄마 몇 시에 오느냐고 찾고, 유연하다는 회사에 가서도 쩔쩔매는 식의 좋지 않은 경험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일을 하더라도 아이가 교육·돌봄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해야겠단 생각이 들어 자란다를 창업하게 됐다.

회사 다닐 때 돌봄 공백을 메워줄 놀이 선생님을 구했던 적이 있다. 대학생 선생님과 아이 관계가 특히 좋았던 걸 떠올렸다. 놀이 선생님을 구인하고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일하는 부모의 갈증을 채워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부모가 원하는 대학생 선생님을 알고리즘으로 정교하게 연결해주는 서비스를 만들었다. 직원(플래너) 한 명이 감당할 수 있는 상담 건수가 수동으로 하면 20건이던 것이 600건으로 확 늘었다. 현재 3500가정이 자란다를 정기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학부모·자란다 선생님의 누적 가입자 수는 각각 35만명이다.”

─저출생 문제가 재앙으로까지 심화한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물질적인 부담도 물론 있겠지만, 그것만으론 설명할 수 없다. 유연함이 거의 없는 곳에서 일했었던 걸 떠올려본다면 문화적인 문제도 크다.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시스템도 필요하다. 엄마도 일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데, 지금은 부부가 누가 그만둘 것인가를 두고 싸운다. 그 공방을 해야만 하는 현 시스템·문화 속에서 그냥 싸우지 말고 낳지 말자고 하는 것이다.”

─정부가 2006년부터 280조원을 쏟아부어도 안 됐다.

“지금까지 나온 정책을 보면 ‘이런 혜택 줄 텐데, 너 왜 안 낳니’라는 식이다. 낳으면 키워줄 것도 아닌데 말이다. 키워준다 해도 엄마를 아이 낳는 도구처럼 생각하는 접근은 전혀 유효하지 않다. 아이로 인해 인생이 바뀌고 기회비용이 커질 것이라는 엄마의 두려움을 일단 공감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엄마를 쉬게 해준다든지, 엄마가 아이와 편하게 지낼 수 있게 해주는 정책은 일을 계속하고 싶어하는 엄마에겐 해결책이 아닐 수 있다.”

한동훈(왼쪽)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해 12월 29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 임명장 수여식에서 장서정 비대위원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연합뉴스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육아휴직을 가야 하는 엄마가 단축 근무 중이라면 남은 시간을 경력이 있는 선배 엄마가 채워줄 수 있다. 엄마가 엄마를 돕는 식이다. 경력 보유 여성을 채용으로 연결해주는 ‘위커넥트’라는 소셜벤처가 있었는데 돈이 안 되니 지금은 사라졌다. 정부가 나서 시스템화하는 것이다. 이를 활용하는 기업에는 가점이나 세금 혜택을 줘야 한다. 비정규직·계약직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대대적으로 환기해야 한다.”

─국민의힘 ‘총선 1호’ 공약으로 나온 저출생 대책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나.

“합류 전부터 꽤 많이 준비돼 있었던 내용이다. 아빠 출산 휴가 1개월(유급) 의무화나 육아휴직 급여 상한 인상(210만원)처럼 비용에 대한 것은 본질은 아닐 수 있다. 다만 아빠의 육아휴직이 가당치 않게 받아들여지는 소규모 기업이 있고,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육아휴직 비용이 누군가에는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반대할 이유는 없는 정책이다.

나머지는 기업에 관한 공약이다.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기업에 혜택을 주는 식이다. 나는 월급 받던 워킹맘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사업주이기도 하다. 작은 사업장은 인력을 타이트(빡빡)하게 운영하는데, 갑자기 직원이 육아휴직 가면 난감한 건 사실이다. 이 역할을 대신해 줄 사람도 없다. 비대위에 합류해서 계속 얘기한 것은 부모가 일할 수 있는 조건을 기업이 만들어줄 수 있도록 정부가 어떻게 지원할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육아기 유연근무 취업규칙을 만들도록 의무화하고 중소기업의 육아휴직 대체인력 지원금을 인상하는 등 기업을 위한 정책이 반영됐다는 점은 이런 목소리를 당이 빠르게 받아들인 결과다. 앞으로 더 많이 목소리를 내려고 한다.”

─정치권으로 한 발 가까이 간 느낌인데.

“나는 어떤 당도 지지하지 않았다. 문제 해결 중심으로 살 뿐이다. 창업도 내가 어려웠던 돌봄 문제를 풀기 위해 시작했다. 요즘 스타트업 환경이 녹록지 않다. 투자자들은 재무 건전성을 최우선 가치로 여긴다. 문제 해결보단 수익 중심으로 흘러가니 본질을 잃어버린 것 같다. 비용을 올리면 보편적 서비스와는 거리가 멀어진다. 이로 인해 동기부여가 안 되던 차에 한동훈 위원장의 비대위 합류 제안 전화를 받았다.

국가도 풀지 못하는 문제를 네가 왜 풀려고 하느냐며 염려해 주시는 분들도 많다. 다행히 공약개발본부는 열심히 일해서 좋은 정책을 만들자는 분위기다. 거기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이를테면 비대위에선 민심을 얻을 만한 인기 공약이나 ‘엄마가 아이와 있어야 행복하다’는 고정관념에서 정책을 시작하려는 경우가 있다. 이런 생각들을 뒤집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봐 달라. 앞으로의 정치 여정 등에 대해선 전혀 계획하고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한 위원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할 말 하며 일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