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항공기 제작사 보잉이 위기에 빠졌다. 최근 비행 중 동체 일부가 뜯겨 나가고, 화물기에 불이 나는 등 잇따른 사고가 발생하면서 신뢰도가 추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7일(현지 시각)에는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탑승하려던 보잉 737기(미국 공군기)가 산소 유출 문제로 이륙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엔데믹으로 신규 비행기 주문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보잉(2위)과 에어버스(1위)의 격차가 더욱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21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보잉의 신형 비행기 주문 대수는 1456대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에어버스는 2319대를 주문받았다. 에어버스 주문량이 보잉에 비해 1.6배 많은 수준이다. 에어버스의 지난해 실적은 이전 최대치인 2014년 1796대보다 29% 많았다.
보잉은 2012년부터 2018년까지 업계 1위를 유지했다. 하지만 2018년 라이언에어와 2019년 에티오피아 항공의 B737 맥스8 추락 사고로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면서 신규 주문량이 급감했다. 당시 미국 연방항공청(FAA)과 중국 등은 운항 중단에 나서기도 했다.
2019년 보잉이 인도한 비행기는 총 380대로 2018년(806대) 대비 52.8% 줄었다. 이후 보잉은 2020년 157대, 2021년 340대, 2022년 480대로 주문량을 조금씩 회복해왔다. 하지만 같은 기간 566대(2020년), 609대(2021년), 661대(2022년)를 인도한 에어버스에 못 미쳤다.
에어버스는 지난해 인도 항공사인 인디고 항공에서 A320 기종 500대를 주문받기도 했다. 상업용 항공기 단일 구매 계약으로는 역사상 최대규모였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보잉이 지난해까지 에어버스와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또다시 품질 논란이 발목을 잡게 됐다”라고 말했다
지난 5일(현지 시각)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 공항에서는 알래스카 항공의 보잉 737 맥스9 여객기가 이륙 10여분 만에 벽면 패널 부품인 ‘도어 플러그’가 분리돼 기내에 구멍이 뚫리는 사고가 났다. 보잉 737 맥스는 보잉 737의 차기 기종이다.
이어 다른 항공사의 737 맥스9 여객기에서도 도어플러그의 볼트가 느슨하게 조여진 문제가 확인되기도 했다. 미국 연방항공당국(FAA)은 보잉 737 맥스9 기종의 운항 중단 조치를 무기한 연장한 상태다. 또 FAA는 보잉에 위임했던 항공기 일부 점검 권한을 박탈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참석했던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의 전용기가 결함으로 이륙하지 못한 사건도 발생했다. 미 공군 소속 보잉 C-40은 보잉 737기종을 개조한 여객기로 부통령, 영부인, 국무장관이 사용한다. 결국, 블링컨 장관은 다른 비행편을 이용해 미국으로 돌아갔다.
지난 19일에는 보잉 대표 기종인 보잉 747-8을 개조한 화물기에서 불이 났다. 화물 항공사인 아틀라스항공이 운영하는 해당 화물기는 마이애미에서 푸에르토리코로 향하는 중이었다. 사고 후 화물기를 점검한 결과 엔진 위에 야구공보다 큰 소프트볼 크기의 구멍이 발견됐다. FAA와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는 조사에 나선 상황이다.
또 다른 항공업계 관계자는 “현재 에어버스가 쌓아놓은 주문량이 보잉 대비 6배가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신규 비행기 주문 계약 등이 몰리는 올해 파리에어쇼에서도 에어버스의 반사이익이 예상된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알래스카 항공 사고에서 문제가 된 B737 맥스9 기종의 경우, 국내에서 운용하는 항공사는 없다. 하지만 같은 맥스 시리즈인 B737 맥스 8은 대한항공 5대, 이스타항공 4대, 티웨이항공·제주항공 각 2대, 진에어 1대 등 총 14대가 있다. 앞서 국토교통부는 B737 맥스 8 국적사 안전관리 정비 현장 점검을 하기도 했다. 맥스9은 맥스8보다 길이가 3.24m 더 길어 좌석을 약 30석 더 많이 설치할 수 있고 화물 용적량도 많다.